대체투자 아이디어 공유…AIF "한일 LP 교류 매년 추진"

(도쿄=연합인포맥스) 송하린 서영태 기자 = 지난해부터 조성된 한·일 관계 해빙 무드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기관 투자자(LP)들도 투자 아이디어를 나누는 소통의 포문을 열었다.

미·중 갈등과 공급망 재편 등 글로벌 환경 변화에 한일 양국이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가운데 민간에서부터 추진된 만남이었다.

◇한일 LP 머리 맞댔다…대체투자 고민 공유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8일 일본 도쿄 열린 '2024 AIF APAC 투자자 연례 총회'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하는 기관투자자(LP)와 글로벌 GP 등 6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2005년 미국 50개주 공적 연기금 협회로 설립된 AIF는 현재 미국과 유럽의 100여개 연기금과 기관투자 담당자들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점차 아시아까지 활동 범위를 넓혀 작년 3월 AIF APAC을 출범했다.

서울에서는 지난 5~6일 네번째로 AIF 아시아 투자자 연례 총회가 열렸는데, 도쿄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 세계 공적 연기금 시장에서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 투자 의견을 공유해 새로운 투자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정삼영 연세대 교수 겸 AIF APAC 총괄이 한일 LP 회담의 산파 역할을 자진했다.

정 교수는 첫 한일 LP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지난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조심스러운 LP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날 참석한 모든 LP들을 1대1로 여러 차례 만나며 이번 한국과 일본의 만남이 현재 투자 담당자들이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고금리 등 글로벌 투자환경을 이해하고 현명한 투자 전략을 모색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 노력의 결과물이 된 이 자리에서는 GPIF가 처한 도전 과제와 공적연금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일본의 소액투자 비과세제도인 NISA(니사), 기업 지배구조 개혁, 일본 자산운용업 부흥책, 도쿄 증권거래소의 순자산비율(PBR) 개혁 등이 소개됐다.

이후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글로벌 LP들이 글로벌 투자환경과 대체투자 전략 등에 대한 의견을 공유했다.

◇국채로는 '역마진' 우려…일본 LP, 부동산·PEF 관심

일본 LP들의 고민은 그들만의 특수한 투자 환경인 '저금리의 덫'에서부터 시작한다.

보험사 특성상 만기가 긴 보험상품과의 듀레이션을 맞추기 위해서는 장기국채를 활용해야 하지만, 이 경우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이어진 저금리 기조 속에서 역마진 우려를 피할 수 없다. 일본 LP들이 운용자산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체투자로 눈을 돌리게 된 배경이다.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탈출을 예고한 현시점에서도 고민은 계속될 전망이다.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의 정상화를 시사하거나 수익률곡선통제(YCC)의 유연화를 추진하면서도, 저금리 기조를 장기간 이어가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나 유럽중앙은행(ECB) 등 주요국 중앙은행과 달리 초저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초저금리 환경 속에서 자산을 운용 중인 일본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 가입자에게 돌려줄 돈을 고려하면 일본 국채에만 투자할 수는 없다"며 "당장에는 크레디트물을 통해 수익률을 보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보험사는 해외채권 시장의 큰손이기도 하다. 해외채권은 엔화 채권보다 많은 이자를 돌려준다. 하지만 해외채권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막대한 환 헤지 비용과 리스크 다변화 때문이다.

일본 LP는 대체투자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다른 일본 보험사 관계자는 일본 부동산 시장에 주목했다. 부동산 공급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일본 건설 현장에서 공사비가 두 배 이상으로 치솟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일본 정부 주도의 대규모 반도체 공장 건설로 물류창고·주택·오피스를 지을 일손이 부족하다고 봤다.

일본 내 비상장기업이 쏠쏠한 수익률을 안겨준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생명보험사의 사모주식(비상장주식) 투자 담당자는 사모펀드 운용사를 제대로 선별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해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사모주식펀드 운용사가 낮은 수익률을 거뒀을 것으로 여겨진다"면서 "현실은 꽤 괜찮은 수익률을 꾸준히 거둔 운용사가 많다"고 귀띔했다.

대체투자 자산 중 하나인 인프라 투자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제기됐다.

한 보험사 인프라 투자 담당자는 '인프라 워시' 현상이 관찰된다고 지적했다. 제품에 친환경 이미지를 덧씌우는 그린 워시(Green Wash)처럼 일부 시장 참가자가 검증되지 않은 자산을 인프라로 분류한다는 경고다.

그는 "인프라의 정의가 넓어지면서 스타디움·카지노·인공위성·로켓까지 인프라의 정의에 속하게 됐다"며 "인프라에 투자할 때 무엇을 바라고 투자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고령화'에서 찾은 대체투자 기회

한국보다 앞서 일찍부터 진행된 고령화는 대체투자 측면에서 투자 기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일본은 미국과 중국에 이은 세계 3위 경제 대국이다. 역사적으로 기술혁신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해왔고, 30년간 지속된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지난 몇 년간 진행한 개혁들이 뿌리내리기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로 인해 일부 일본 중소기업에서는 '가업 승계'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현 경영자가 고령화하면서 그동안 축적된 경영 노하우와 기술 수준을 연계하지 못하고 기업이 사멸해야 하는 문제가 코로나19 이후로 더 대두됐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2019년 보고서에서 2025년이 되면 일본 중소기업의 60%는 70세 이상 경영자에 의해 운영될 것으로 예상했다. 고령자가 후계자를 찾지 못하면서 2025년까지 약 63만개의 중소기업이 폐업하면서. 경제적 비용으로는 약 1천650억달러와 약 650만개의 일자리가 손실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한 글로벌 GP는 "이것은 사모펀드(PEF)에는 잠재적인 비옥한 기회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사모펀드를 통한 인수합병(M&A)이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가업승계 문제 속에서 사모펀드는 경영권 인수 후 기업가치 제고를 통해 수익을 내는 '바이아웃(Buy-Out)' 전략을 구사하거나, 중소기업 기업승계를 위한 펀드를 조성하는 등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다.

실제 일본에서는 2020년 사모펀드사 베인캐피탈이 일본 요양서비스 기업 니치이 학관을 산하에 둔 니치이홀딩스(HD) 주식을 매수한 뒤 12억달러에 인수했고, 2021년에는 약 10억달러에 가까운 중견기업 기업승계 펀드를 조성했다. 지난해 말 니치이HD는 닛폰생명보험이 발행주식 100%를 취득하는 방식으로 인수해갔다.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상황이다. 중소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소제조업 대표자 가운데 60대 이상 비중이 2010년 약 13%에서 2021년 약 32%로 10년 새 2.5배 증가했다.

지난해 세법 개정안을 통해 기술 혁신형 중소기업 M&A 시에는 세액공제 대상액이 상향 조정되는 등 관련 시장이 형성되는 단계다.

정삼영 교수는 "앞으로도 매년 도쿄에서 한국과 일본 LP가 교류하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라며 "글로벌 투자환경의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현시기에 지정학적으로 G2 사이에 자리 잡은 한국과 일본의 LP들이 함께 같은 주제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면 글로벌 투자업계에서도 긴장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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