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의식주(衣食住)와 관련된 장사는 망하지 않는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젊었을 때 지인들이 '앞으로 무슨 사업의 전망이 좋겠냐'고 물어오면 이렇게 대답했다. 요즘 말로 하면 미래 성장산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간단한 생활의 지혜를 들려준 셈이었다.

그의 경영철학은 어려운 게 아니었다. 농경사회를 갓 벗어난 한국에 절실한 게 무엇인지를 알고 국수장사로 출발해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 초창기 사업을 일구었다.

나중에 삼성이 반도체에 몰방한 것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는 시점에서 인간의 욕망이 의식주 해결 이후, 정보를 소비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쪽으로 진화한다는 점을 간파한 때문이었다.

이제 삼성은 과거의 화려한 성공담을 뒤로하고 어떤 사업으로 미래 10년을 대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점이다.

폴 놀테(Paul Nolte)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는 '위험 사회와 새로운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가 양극화와 개인주의의 압박 아래서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분석했다. 그는 금융위기로 적어도 자본주의가 망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향후 산업의 무게 중심이 서비스업 위주의 체제가 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경제성장률은 필수가 아니고 성장 없는 자본주의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공교롭게도 삼성의 입장에서는 창업주의 손녀들이 놀테 교수가 지적했던 미래의 산업이라는 의식주 관련 서비스 업종을 이끌고 있어 흥미를 끌고 있다. 그룹의 초창기 모태 산업이 반세기가 흐르고 나서 서비스업으로 화려하게 부활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특히 창업주의 손녀인 이부진의 호텔신라가 고급 제과점 체인인 '아티제'를 운영해 논란이 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런 논란에서 주의할 점은 산업 사이클이 중후 장대(重厚長大)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변하는 추세에서 놓치는 부분이 없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제과업을 포함한 의식주와 관련된 진화한 고급 서비스업이 부잣집 딸들의 '취미' 사업이 아니라, 내수와 세계화 전략 여부에 따라 풍부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미래 수종 사업의 하나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재벌기업도 유기체와 같아서 현재 제일 잘 나가는 곳도 언젠가 업(業)의 원형이 변하는 추세를 쫓아가지 못해 생로병사의 과정을 밟을 가능성은 항상 상존한다.

선과 악, 명과 암이 공존하는 시대의 산물인 재벌기업은 따라서 인위적으로 해체되거나 개혁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제도와 법으로 '쿨'하게 규제돼야 할 대상일 뿐일지도 모른다.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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