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젊은 날 김구(金九) 선생은 일본인 장교를 때려죽이고 복역하다가 탈옥해서 공주 마곡사(麻谷寺)에 숨어서 잠시 승려생활을 했다. 자신의 처지와 조국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며 마음 수련을 하던 그는 자신의 얼굴 모습이 시골 저잣거리의 소 장사 같은 상을 가졌다고 늘 콤플렉스를 품고 있었다. 인간의 얼굴 생김새가 성정(性情)과 수명, 운명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고민하던 그에게 하루는 주지 스님이 섬광 같은 화두를 던져줬다.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

외양보다 내면이 인간의 운명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얘기다.

추석 명절 동안 영화 '관상(觀相)'을 보았다. 농염한 한양 최고 기방(妓房) 여주인이 당대의 관상쟁이에게 팔짱을 끼며 콧소리를 했다. "관상불여심상은 틀렸고, 관상불여'눈치'가 맞아요". 그녀는 기방에서 어릴 적부터 걸레질하며 눈칫밥 먹으며 '서바이벌'한지라, 웬만한 관상쟁이보다 사람을 더 꿰뚫어볼 줄 안다고 농을 쳤다.

눈치가 빨라야 살아남는 것은 금융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금융시장 주변 환경과 계절이 바뀌고 있는지를 감을 잡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영화에서 주인공 관상쟁이는 말년에 바닷가 마을에 찾아온 한명회(韓明澮)에게 푸른 파도를 쳐다보며 회상에 젖어 말했다. '나는 잔파도만 볼 줄 알았다. 파도를 일으키는 건 바람이었는데, 잔파도만 보느라 바람의 흐름을 놓쳤다. 세조의 역성혁명이 성공한 것은 그들 무리의 관상이 좋아서가 아니라, 바람의 움직임에 편승했기에 가능했다. 중요한 것은 바람이었고, 혁명 주체들도 결국은 파도의 포말로 사라진다.'

'파도'를 움직이는 것이 '바람'이기도 하지만, 금융시장에서는 바람뿐만 아니라 바다 밑바닥을 흐르는 '조류'의 큰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미 연준의 양적완화(QE) 축소(EXIT) 연기 결정 이후, 일단 겉으로 나타난 '파도'의 모습인 한국의 국가 CDS프리미엄은 안정적이고, 외자유입이 봇물 터지듯이 쇄도해 NDF 시장에서 환율은 급락했다.

경제. 금융부처를 비롯해 딜러 및 트레이더들은 QE 축소 연기 결정이 '조류'의 흐름상 일시 멈춤인지 아닌지를 분석하느라 온 신경이 곤두서고 있다.

이 결정이 분명히 호재이지만 연내 축소를 시작해서 내년 중에 종료 기준을 참작했을 때, 축소의 시작은 더욱 분명해지고 급해졌다는 의미로도 재해석되고 있다. QE의 규모가 현재 월 850억 달러이니 만약 월 85억 달러씩 줄인다면 10개월이나 걸림을 고려할 때, 내년 중 종결을 목표로 한다면 QE 축소는 거의 임박했다는 의미인 셈이다.

'파도'와 '바람'과 '조류'를 모두 살펴야 할 때인 것 같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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