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1975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김정렴 비서실장에게 "포항 앞바다에서 채유한 원유 한 항아리를 가져오라"고 한 뒤 회의 참석자들에게 냄새를 맡아보게 했다. 이듬해 초 정부는 포항 앞바다에서 석유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을 언급했고 경제성이 있는지 조사중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부푼 기대감에 주가는 폭등하고, 포항을 비롯해 전국 부동산 가격은 거침없이 뛰어올랐다.

산업 부흥과 경제 성장이 절실했던 시기에, 상상도 못했던 산유국이 된다는 희망과 감격에 따른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는 한여름밤의 꿈처럼 헤프닝으로 끝나고 만다. 그만큼 석유라는 자원은 예나 지금이나 절체절명의 요소였다.

국내증시 차원에서도 역사적으로 외부 요인 가운데 `유가'는 가장 큰 변수였다.

분석가들은 국내 주가와 유가의 상관관계를 `정(正)'의 관계로 설명한다. 유가 폭등에 따른 비용상승 압박보다는 대체로 유가 상승 시기가 글로벌 경기의 활황 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유가가 오르건 물가 상승률이 가파르건, 공장이 돌고 고용이 창출되고 수출이 잘 돼야 전반적인 거시 경제의 상태가 양호했다는 게 과거의 패턴이다.







(※연합인포맥스 금융공학연구소 제공)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최근 국제유가 급락이 주가 흐름과 궤적을 함께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더욱이 장기간에 걸친 저금리 저성장의 기조가 유가 하락을 동반해 연장된다면 각종 자산가격의 하락과 경기 냉각에 대한 우려는 더 심화될 것이라는 게 분석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올해 유가 상황을 감안한 주요 투자금융사들의 코스피 전망치는 상당히 보수적이다.

코스피 하단 전망은 1,750∼1,900, 상단은 2,150∼2,250으로 제시됐다. 이는 과거 연고점을 2,300∼2,400으로 제시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조심스러운 전망이다.

하지만 서둘러 실망할 필요는 없다. 비록 원유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지만, 포항 앞바다 원유 발견 헤프닝 30년뒤 원유를 대체할 반도체산업을 가지게 됐고, 귀금속을 대신할 자동차와 가전제품과 한류문화상품이 있는 경제 구조를 갖게 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최근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 2015'은 그야말로 최첨단 미래지향적 전자산업의 모습이 응축돼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세계 가전 시장의 중심임을 입증하듯 이목을 끌고 있고, 각 콘퍼런스에는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환호하고 있다.

전 비서실장 김정렴씨의 저서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에서는 이렇게 회고 한다. `수출용 천연자원이 없는 한국은 공산품 수출밖에 살 길이 없었다. 그러나 개발 초기 기업이 수출까지 하게 되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그래서 수출지향적 공업화가 국가기본정책으로 채택된 것이다.'

30년 전 포항 앞바다 원유 매장 기대가 헤프닝으로 끝난 것이 절박감을 더해줬고, 그것이 한국 경제에 오히려 약이 됐을 지도 모르겠다.

(산업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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