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법은 맞긴 한데 아무래도 이젠 직업을 바꿔야겠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의 시행 결정을 들은 한 증권사 기관영업 담당자의 탄식이다. 적지 않은 세월을 업계의 `을'로 살아오며 '대외 관계업'의 달인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그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모든 거래 관계에 있어 존재하는 갑과 을, 굳이 그런 관계가 아니더라도 관습처럼 존재해 온 공공기관과 단체를 대상으로 그가 해 온 `접대'의 상당 부분이 위법이 될 소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직간접적으로 이들 기관과 업무상 교제를 위해 먹고 마시는 일을 같이 한 것만으로도 모두가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 있다.

금융업계 특히. 더 좁혀서 금융투자업, 즉 증권가의 `김영란법'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담하다.

특히 직무상 각 기금이나 당국을 포함한 대관 영업활동을 해야 하는 `을' 직군의 입장에서 `접대'는 곧 영업과 정보활동이자 계약성사에 필수 과정이다.

한 증권사 기관 영업 담당자는 "해당 기관에 대한 접대가 금지돼 영업비용과 부담이 없어졌다고 좋아라 할 브로커나 세일즈 담당자는 없을 것"이라며 "입법 취지는 이해하지만 순진한 발상이다"고 폄하한다.

한발 더 나아가 `김영란법'이 금융투자업계에 본격 적용될 이후를 걱정하는 소리도 있다.

한 자산운용사 영업담당 임원은 "영업하기 위한 한끼 밥값한도가 3만원인걸로 알고 있는데 3만원이면 솔직히 밥먹고 소주한잔하면 끝이다"며 "금품수수 관행은 금융투자업계에서 거의 사라져서 식사나 골프 접대로 영업하는 곳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하면 부작용 생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법의 취지는 좋지만 새로운 영업방식, 즉 법을 피해 음지에서 영업하는 게 늘어날 것이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또 다른 증권사 임원은 "경기가 안좋아서 예전만큼 접대도 못하고, 예전보다 이래저래 많이 거래 관행은 깨끗해졌다"며 법의 필요성을 일축하기도 했다.

금융투자업계의 영업대상은 은행,자산운용,투신,연기금,공제회 등 바이사이드(Buyside)가 주류를 이룬다.

영업상의 `갑'인 이 직군의 반응은 과연 어떨까.

`갑'에 해당하는 한 기관 운용 담당자는 "우리나라 중개기관은 차별화된 서비스가 없이 다 똑같다. 그러다보니 안면이 있는 측에 주문을 주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냐"고 말한다. 차별화되고 경쟁력을 가진 셀사이드(Sellside)와 거래를 하고 싶지만, 다 거기서 거기인데 교류가 있는 측에 우선적으로 거래를 트는 건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한 시중은행 대관 담당자는 "명절에 몇만원짜리 과일 선물을 공직자에게 보냈다고 해서 이를 금품 제공으로 보는 것이 과연 정서에 맞겠느냐"며 "100만원 넘는 선물을 하는 경우는 금융업계에선 없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답을 한 사람들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자신들이 범죄자가 될 처지라는 불쾌감이 느껴졌다.

`김영란법'이 지향하는 목적에 대해 트집잡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법의 취지는 직관적으로도 `선(善)'임엔 틀림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 시행으로 발생할 생각치 못한 부작용과 경제적 손실에 대해 입법 발의와 결의 과정에서 고민의 과정이 충분했는지 의심을 떨칠 수 없다.

(산업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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