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7년만에 엔화와 원화의 처지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달러당 70엔도 깨질듯 보이던 엔화는 120엔 언저리까지 무려 50엔 가까이 상승(절하)했고 1천600원선까지 치솟던 원화는 1천100원선도 지키지 못해 500원 이상 하락(절상)했다.

엔화는 일본 외환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수출 기업 실적 회복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원화는 뚜렷한 정책목표도 없이 절상기조를 이어오면서 수출경쟁력 훼손의 장본인으로 지목되는 등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이에 우리 수출 기업들은 2012년 말부터 가파른 속도로 진행된 글로벌 엔저 시대를 맞아 아우성이다. 대부분 수출 기업들이 일본과 경쟁적인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어 엔저에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경쟁력이 빠른 속도로 훼손되고 있지만 우리 외환당국은 환율정책의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 3년 이상 준비한 로드맵으로 엔저 시대를 견인한 것과 대비된 다.



◇일본의 부활을 예고한 하마다 고이치

일본이 글로벌 지진아에서 모범생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데는 소신있는 한 명의 경제학자가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아베노믹스의 설계자로 알려진 하마다 고이치(浜田宏一)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하마다 교수는 '아메리카는 일본의 부활을 알고 있다(アメリカは日本の復活を知っている )'는 제목의 저서를 통해 이미 2012년부터 일본이 엔저를 바탕으로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부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하마다 교수는 저서의 제목에서 시사했듯이 미국 등 서구 선진국이 일본의 엔저를 용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G7 등 선진국들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는 글로벌 경제에 일본의 부활이 그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었다. 여태까지 미국 등 서구 선진국을 보면 일본의 엔저를 용인하는 모양새다.

하마다의 예언대로 2008년 10월28일 6,994.90까지 떨어졌던니케이지수는 지난 23일 20,187.65로 세배 가량치솟았다.

그는 일본이 일본국채(JGB) 금리 급등으로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에 대해 "자신이 있으면 일본 주식시장에 대해 매도(숏)포지션을 취하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금도 하마다 교수의 정책 훈수를 금과옥조처럼 받들면서 착실하게 실천하고 있다.





<일본 니케이225지수는 하마다 고이치 교수가 주창한 아베노믹스가 시행된 2013년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거듭해 저점대비 세배 가량 오른 20,000 고지를 점령했다.>



◇ 한국에도 뛰어난 경제학자들은 많은 데...

일본은 엔저를 바탕으로 화려한 변신에 성공했지만 한국은 경제정책의 방점을 어디에 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환율정책도 뚜렷한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외환당국은 엔화에 동조하도록 원화를 관리하겠다고 밝혔지만 최근 들어서는 원화만 강세를 보이는 등 탈동조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정책의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환율 정책에서도 뚜렷한 색깍을 드러내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복지확대와 경제개혁에 방점을 두는 듯한 경제정책을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집권 이후 창조경제라는 구호를 내걸며 성장 전략을 바꿨다.

이후 가계부채 확대에도 부동산 경기부터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부동산 중심의 경기 진작책이 전방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경제정책의 역량이 부동산 경기 활성화 등 내수에 집중되면서 수출 동력은 급격하게 퇴조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달러-원 환율이 절상기조를 이어온 가운데 코스피지수는2,000을 중심으로 박스권 등락을 거듭하다 최근들어서야 탈출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를 통해 올해 수출규모가 지난해보다 1.9% 감소한 5천620억달러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복지와 경제개혁에서 창조경제로,다시 가계부채의 관리에서 부동산 경기 진작으로 경제정책이 뚜렷한 색깔을 가지지 못한 탓에 유일한 성장 동력이었던 수출 경쟁력만 훼손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그간 박근혜 정부도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광두 국가 미래 연구원장 등 걸출한 경제학자들을 경제 멘토로 뒀지만일본 아베 정권의 하마다 고이치 교수 같은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이제 우리도 하마다 고이치 같은 경제학자를 한 명 쯤 모시고 장기 성장 전략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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