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올해 최대의 잭폿은 의외의 기업인 IHS마킷이 터뜨렸다. 금융정보업체인 IHS마킷이 주식교환 방식으로 440억 달러에 미국의 금융 서비스 업체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 글로벌(S&P글로벌)에 인수되면서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설계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ARM 홀딩스의 인수가액 400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손에 잡히는 실물을 생산하지도 않는 금융 정보업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비싼 값에 팔린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데이터는 노동과 자본을 뛰어넘는 혁신적 생산요소다"는 보고서를 통해 이미 제시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데이터가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게 보고서의 핵심이다. 데이터가 중요한 자원 및 가치의 원천이라는 의미다. 산업혁명 시대에 석탄과 석유 등 석화에너지가 내연기관을 가동하면서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대목에서 석탄과 석유를 데이터로 치환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런 패러다임을 보면 노동과 자본 중심의 전통적 경제가 데이터 기반경제(Data-driven Economy)로 이행이 필수 불가결이다. 데이터에 기반한 디지털화(Digitalization)가 경제·사회 변화의 주된 원동력이라는 의미다.

4차 산업 혁명의 총아로 꼽히는 사물인터넷(IoT), 5G,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AI(인공지능), 블록체인(Blockchain) 등으로 대표되는 기술은 모두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상호의존성(interdependent)이 크다. 디지털화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상호의존적 생태계를 이룰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S&P글로벌이 엄청난 인수비용을 치르고 금융데이터 수집에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금융도 앞으로 데이터에 기반한 가치 창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S&P글로벌의 IHS마킷 인수가 금융 관련이 아니라 4차 산업의 미래에 대한 뉴스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디지털화된 데이터를 생산하는 기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고, 로열더치셸이고, 엑손 모빌이다.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이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핵심 동력인 데이터에 대한 이해 없이 프런트엔드서비스 차원의 앱만 잔뜩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시티·스마트팩토리, 사물인터넷(IoT), 5G,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AI(인공지능), 블록체인(Blockchain) 등 말의 성찬만 있고 결과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멋진 디자인과 탁월한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스포츠카를 만들었지만, 연료가 없어 구동을 못 하는 것과 비슷한 처지다.

블록체인의 경우만 봐도 갈 길이 멀다. 블록체인은 두 가지의 수학적 원리가 근간을 이룬다. 하나는 암호화하는 알고리즘인 SHA256이고 다른 하나는 블록을 만드는 알고리즘인 머클트리(Merkle Tree)라는 개념이다. 암호화 기술은 벌써 우리 실생활에 들어와 있다. 예컨대 웹사이트에 로그인할 때 적용되는 수학적 원리다. 머클트리라는 개념은 좀 복잡하다. 이 트리를 연산하는 최적의 알고리즘은 수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 이 때문에 이 트리를 얼마나 빨리 연산하느냐에 따라 블록체인의 품질이 결정된다. 최근 신고가 경신 행진을 거듭하며 2만달러 선에 바짝 다가선 비트코인도 이런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데이터의 처리 및 연산능력도 한국은 아직 수백 킬로헤르츠(KHZ) 수준에서 도토리 키재기식 경쟁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멘스 등 세계 굴지의 실력자들은 이미 수십 메가헤르츠(MHZ) 단위로 앞서나가고 있다. 한국이 이걸 기가헤르츠(GHZ) 단위로 처리하는 데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한국이 이걸 해낸다면 4차 산업 혁명의 BP, 로열더치셸, 엑손 모빌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다.

4차 산업 혁명의 처음과 끝은 데이터다. 한국은 4차산업 혁명시대의 석유인 데이터에 대해 어떤 준비가 돼 있을까. (배수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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