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채권시장은 참 어렵다. 금리 상승을 촉발해야 할 재료가 금리 하락을 견인하는 등 수수께끼 같은 현상이 다반사다. 우리말로 수수께끼를 의미하는 'conundrum'이라는 단어가 채권시장에서 일반적인 용어로 통용될 정도다.

◇그린스펀 수수께끼의 비밀은….

채권시장의 수수께끼는 앨런 그린스펀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으로 재임했던 시절의 '그린스펀 수수께끼(Greenspan's conundrum)가 원조 격이다.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란 지난 2004년 중반부터 연준이 통화 긴축에 들어갔지만, 미국 국채 10년물 등의 장기금리가 큰 폭으로 내린 현상을 일컫는다.

수수께끼 같은 상황은 장기금리가 긴 세월에 걸쳐 뚜렷한 하락 추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진단이 제기됐다. 선진국과 신흥국 등의 장기금리는 지난 30여 년간 평균 450bp가량 하락한 것으로 진단됐다.

전 세계의 인구통계학적 변화가 장기금리 하락을 주도한 것으로 풀이됐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지난 2017년 노동시장의 성장이 둔화하고 노동자들이 원하는 금리 수준이 낮아진 데 따라 장기금리가 90bp가량 하락했다고 진단했다. 소득 불균형도 금리 하락에 한몫한 것으로 분석됐다. 부유층을 중심으로 저축이 늘어나면서 금리를 45bp 끌어내린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작은 정부론이 대세가 되면서 공공투자를 위한 자금 수요도 큰 폭으로 줄었다. 사회기반시설(SOC) 등 공공재가 포함되는 자본재에 대한 투자 감소는 자금 수요 감소로 이어져 추세적인 금리 하락으로 이어졌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1% 포인트 낮아지는 등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한 것도 장기금리를 100bp가량 끌어내린 것으로 분석됐다.

◇인플레이션 급등에도 채권 가격 오르는 '코로나19 수수께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인류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주면서 채권시장의 수수께끼가 되살아나고 있다. 천문학적인 유동성 공급에 따른 인플레이션 급등에도 채권 가격이 오르고 있어서다. 인플레이션은 채권의 할인율인 금리 상승 요인으로 채권 가격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코로나19 백신 보급에 따른 수요 증가와 공급망 병목 현상에 따른 공급 부족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은 당초 시장 전망을 훌쩍 웃도는 것으로 속속 확인됐다.

지난 13일 발표된 6월 CPI는 전월보다 0.9% 오르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5.4% 올랐다. 전년 대비 상승률 5.4%는 2008년 8월(5.4%)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인 전월 대비 0.5% 상승, 전년 대비 5.0% 상승을 모두 웃돌았다. 지난 5월 CPI는 전월 대비 0.6% 오르고, 전년 대비 5.0% 올랐었다. 변동성이 큰 음식과 에너지를 제외한 6월 근원 CPI도 전월보다 0.9% 상승하고, 전년 대비로는 4.5% 올랐다. 전년 동기 대비 4.5% 상승은 무려 1991년 이후 최고치에 해당한다. 지난 5월에는 근원 CPI가 전월 대비 0.7%, 전년 대비 3.8% 올랐었다.

미국의 6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전월 대비 1.0% 올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사전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 0.6% 상승을 큰 폭으로 웃돌았지만, 파장이 제한됐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14일 의회 증언에 나서면서 미 국채 수익률은 오히려 반락했다. 파월 의장은 최근 인플레이션 상승이 대부분 팬데믹에 따른 기저효과, 공급망 병목현상 등 일시적인 요인 탓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파월은 일시적인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서 성급하게 대응하게 되면 실수하는 것이라며 초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파월의 비둘기파적인 행보에 안도하며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연 1.3%대로 진입했고 2년물과 스프레드도 111bp 수준으로 줄었다. 10년물과 2년물의 장단기 금리 스프레드는 3월 한때 158bp까지 확대됐다. 지난해 말에는 해당 스프레드가 79bp 수준까지 축소되기도 했다. 장단기 금리 스프레드 축소는 대개는 경기 둔화가 점쳐질 때 나타나고 스프레드 확대는 경기 회복이 점쳐질 때 나타난다.

◇장단기 금리 스프레드 축소로 본 경기 전망은….

장단기 금리 스프레드로만 보면 채권시장은 이미 경기가 정점을 지난 것으로 풀이한다는 의미다.

실제 연준의 주요 경기 판단지표인 공급관리협회(ISM)는 지난 3월에 최고치를 경신한 뒤 시장 예상보다 빨리 둔화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1980년 이후 ISM 제조업지수가 정점을 통과한 이후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하락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코로나19의 델타 변이가 확산하고 있다는 점도 장기금리 하락의 요인으로 지목됐다. 일부 국가에서 델타 변이 등의 영향으로 경제 재개를 연기하거나 새로운 봉쇄조치에 돌입하는 등 경제 하방 리스크를 강화하고 있어서다.

미국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델타 변이가 신규 확진자의 51.7%를 차지하는 지배적인 변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도발인 델타 변이는 영국발 변이인 알파 변이보다 약 60% 정도 전염력이 더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러스가 사람 세포 속으로 들어갈 때 사용하는 스파이크 단백질에 돌연변이가 생겨 세포에 잘 진입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 독일 분트채의 수익률과 스프레드가 확대된 데 따라 해외 투자자들의 자금이 유입된 것도 미 국채 장기물 수익률을 끌어내린 원동력으로 풀이됐다.

경기회복 기대를 바탕으로 장단기 금리 차이 확대로 미 국채 수익률 곡선이 가팔라질 것이라고 베팅했던 포지션이 급하게 청산된 것도 미 국채 수익률 하락의 배경 가운데 하나다. 단기물을 매수하고 장기물을 매도했던 포지션을 뒤집거나 줄이는 데 따른 후폭풍이라는 게 뉴욕 채권시장의 진단이다.

한국 전문가들이 뉴욕 채권시장에 대해 더 깊은 통찰력을 가진 분석에 나선 점도 눈길을 끌고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이 그레이트 인플레이션이 다시 올까를 주제로 분석한 내용(지난 12일 자 인포맥스 유튜브 방송분 https://www.youtube.com/watch?v=h7n5tZZInJk)과 이에 앞서 오건영 신한은행 IPS기획부 부부장이 진단한 '인플레이션 우려 뒤에 숨은 디플레이션 악령'이라는 제목으로 진단한 게시물은 (지난 5일자 인포맥스 유튜브 방손분 https://www.youtube.com/watch?v=NGKn4oQUaQg) 미국채 시장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금융도 한국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하는 것 같다. (배수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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