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경제지표의 통계적 규칙성은 그것을 정책목표로 삼고 규제하기 시작하는 순간 사라진다. 이른바 굿하트의 법칙(Goodhart's law)이다. 세계적인 통화정책 이론가인 찰스 굿하트(Charles Goodhart)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LSE) 교수가 1975년 발표한 이론이다. 통화량을 규제할 경우 통화량 그래프가 종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움직이는 현상 등이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생존한 자신의 이름을 딴 이론이 통용될 정도의 거두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는 굿하트 교수가 경제학자 마노즈 프라단(Manoj Pradhan)과 지난 여름 '인구구조의 대전환(The Great Demographic Reversal)'이라는 책을 통해 또 한 번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고령화 사회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일종의 경종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수요가 회복되면 10% 이르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도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들이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예상하는 경로는 단순하다. 거시경제학적 이론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유럽, 일본, 한국에 이어 세계의 공장 노릇을 했던 중국도 고령화가 시작됐다. 고령화로 노동인구가 줄면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임금은 인상된다. 고령화로 정부도 세금을 올려야 한다. 노동인구와 정부가 부양해야 할 인구가 급증하면서다. 세금이 오르면 임금 상승 압력이 더 높아진다. 가처분 소득이 줄어든 노동인구가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압박이 본격화하는 악순화의 고리가 완성되는 셈이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중앙은행이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실시하면 부채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이들의 주장과 동떨어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손 부족이 현실화한 일본의 경우 임금 상승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는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은행(BOJ)은 사실상 마이너스 기준금리와 양적완화까지 실시하는 등 초완화적인 통화정책을 10년 이상 실시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목표지인 2%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아베노믹스를 바탕으로 기업들을 상대로 임금 인상을 직접 압박했지만 인플레이션 징후는 감지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굿하트 교수는 일본 기업들은 2000년대 들어서 값싼 해외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피해갔다고 주장했다. 전세계가 고령화 사회로 치닫는 상황에서는 일본의 사례가 일반화되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굿하트 교수 등이 고령화 사회의 수요 측면을 무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 수요가 줄어들면서 저성장 사회로 접어든다는 점을 굿하트 교수 등이 간과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저성장 사회는 명목 금리에서 물가 상승분을 제외한 실질 금리 수준도 끌어내리기 마련이다.

스탠퍼드 대학의 신예 경제학 교수인 아드린 오컬러트 교수가 거장인 굿하트 교수의 이론에 반기를 든 대표적인 인물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인플레이션 향배를 가늠하는 데 인구구성도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거시경제학계의 80대 거장과 30대 신예의 이론적 대결 구도도 흥미롭다.(배수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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