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천조국(千兆國). 국방 예산만 천조 원이라는 뜻으로, 엄청난 경제력을 지니고 국방비를 지출하는 미국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이런 엄청난 경제규모를 가진 미국의 소비자 물가지수(CPI) 상승률이 5%에 달했다. 물가 상승률만 보면 어지간한 신흥국 수준이다.

◇월가에 이는 연준 책임론

인플레이션 파이터 역할을 해야 하는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대한 원망이 월가를 중심으로 일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내년까지 인플레이션 압력이 이어질 수도 있다면서도 그 원인을 공급망 병목 현상 탓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이 줄기차게 주장했던 일시적인 인플레이션(transitory inflation)은 벌써 낯선 용어가 됐다.

파월 의장은 그동안 높은 인플레이션은 경제 재개에 따른 공급망 병목 현상 탓으로 곧 해소될 것이라며 정책 대응을 최대한 늦춰 왔다.

덕분에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미국 국채 수익률이 빅 랠리를 펼쳤고 미국 뉴욕증시에서 3대 주요 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따라 연준이 초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장기간 펼친 덕분이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제로로 내리는 한편 매월 1천200억달러 규모의 미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까지 사줬다. 시장은 넘치는 유동성으로 파티를 벌였고 이른바 채권 투자자와 주식 투자자가 모두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흥청망청 파티 분위기를 만끽하던 금융시장은 응석받이 철부지와 너무 닮은 꼴로 변했다. 연준이 파티를 끝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시늉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고 있어서다. 파티를 위해 마련된 펀치볼이 치워지기도 전에 나스닥 등 주요 지수가 하루에만 2% 안팎씩 오르내리고 있다.

일부 시장참가자들은 파월이 말을 바꿨다고 비난하기 바쁘다. 맞는 말이다. 변호사 출신인 파월은 지난 2019년부터 여러 차례 말을 바꿔 왔다.

◇ 탐욕의 금융권도 공동책임…공짜 점심은 없다

하지만 파월만의 문제인가. 지표를 중심으로 시장을 분석해야 하는 시장 참가자들이 감내해야 할 몫은 없을까.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난 각종 경제 정책은 반드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게 여태까지 금융시장이 체득해온 변함없는 원칙이다.

월가를 비롯한 금융가는 파월이 일시적(transitory)이라고 말했을 때 그에 대한 개념 규정을 물어봤어야 했다.

이와 관련 뉴욕에 있는 헤지펀드이면서 글로벌 물가채를 거래하는 윈쇼어 캐피털 파트너스의 강 후는 "한동안 3~4%의 인플레이션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공급 사이드의 붕괴가 끝이 아니며 '일시적인 인플레이션(transitory inflation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모르는 시기에 진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에피소드가 지나면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정책입안자들이 반대편에서 오버슈팅할 가능성(금리 조기인상)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샤워실의 바보(A fool in the shower room)' 같은 정책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샤워실의 바보는 샤워실에서 물을 틀 때 따뜻한 물이 빨리 나오게 수도꼭지를 온수 쪽으로 과도하게 돌렸다가 너무 뜨거우면 깜짝 놀라 얼른 찬물 쪽으로 돌리는 경우를 일컫는다. 찬물이 세게 나오면 따뜻한 물로 성급하게 꼭지를 돌리는 반대의 경우도 포함된다. 경기과열이나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통화 및 재정 정책 당국의 섣부른 시장 개입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는 우화다.

뉴욕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50년전 주창한 명언이다. 프리드먼은 1960년대부터 통화주의(monetarism)를 주창하면서 케인즈 학파에 대항한 시카고학파(The Chicago School)의 정신적 지주다. 프리드먼은 1960~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설명하면서 케인즈식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비판했다. 그의 주장은 화폐 공급량의 변동률을 일정 범위에서 억제해야 한다는 통화주의로 이어졌다.

◇이번은 예외일 수 있을까

굳이 밀턴 프리드먼까지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자산 인플레이션은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주도했다.

중앙은행이 각종 채권까지 사들이며 공급한 유동성이 자산 시장으로만 흘러 들어간 결과다. 중앙은행들은 금융권이 저렴한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도 자산에 대한 과도한 식탐을 제어하지 못했다. 금융기관은 리스크가 증폭된 실물 부문에 대해 자원을 배분하기보다 투자수익률이 보장되는 신흥국 등의 자산을 쓸어 담았다.

미국이 수도꼭지를 잠그려는 시늉만 보였는데 글로벌 환율이 요동을 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이 테이퍼링을 넘어 기준금리까지 인상할 경우 국내외 금융시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경제학에서는 자산 가격이 내재가치와 비교해 과대평가된 현상을 버블(거품)이라고 규정한다. 내재가치는 자산의 미래 기대수익률을 반영한 가격이다.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이 내재가치를 비이성적으로 넘어선 버블은 꺼지기 마련이다. 1990년 이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그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랬다. 이제 자산 인플레이션의 대가를 치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은 예외가 될 수 있을까.(배수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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