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 8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금통위 기자간담회 도중 갑자기 조윤제 금융통화위원을 언급한 대목이다.

이 총재는 한은의 통화정책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지 않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조윤제 위원님께서 아주 표현을 명확하게 했다"고 말했다.

부분적으로나마 통화정책에 대한 조 위원의 입장을 처음으로 알 수 있는 기회였다. 기자가 아는 한 조 위원은 재작년 4월 한은에 온 뒤로 익명으로 내는 금통위 의사록 외에 통화정책에 관한 의견을 외부로 표출한 적이 없다.

조 위원은 최근 한 일간지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지만 북핵 등 외교 관련 사안이나 제도 개혁에 대해서만 다뤘을 뿐이다. 그 밖의 대외적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겠으나 공개를 하지 않으니 밖에서는 알 길이 없다.

조 위원을 저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이번 에피소드가 특이하게 보일 만큼 한은 총재 이외에 다른 금통위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얘기다.

지난 7월 서영경 금통위원이 두 차례의 외부 강연을 했고 이달에도 예정돼 있지만, 다른 금통위원의 행보는 조용하다 못해 비밀스럽기까지 하다. 금통위원들의 '스텔스' 행보는 한은과 시장의 소통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은 총재가 혼자 금통위를 대변해야 메시지의 혼선을 줄일 수 있다는 변호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그 반대다. 총재 혼자서 7명이 모이는 금통위를 대변하다 보니 오히려 혼선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한은 금통위와 미국 잭슨홀 회의를 거치면서 시장 금리가 급등한 데는 이런 영향이 없지 않다. 채권시장이 이 총재의 메시지가 단기간에 변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이 총재는 8월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내년도 기준금리는 불확실성이 커 연말에 가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가 이틀 뒤인 미국 현지 인터뷰에서는 연준보다 금리인상을 먼저 종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한 3년물 기준 국고채 금리는 지난 1일 3.778%를 기록해 6월 이후 두 달 만에 고점을 경신했다.

이렇게 혼선이 생길 경우 한은 총재가 또 나서서 대응하다가는 오해가 더 쌓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말을 바꾼다는 공격을 받기 십상이다. 다른 금통위원이 나서 시장과의 오해를 적절히 풀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중앙은행의 대외적 소통에 조력자들이 필요하다는 점은 너 나 할 것 없이 활발히 소통하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미국 지역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들의 관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항상 금통위가 협의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금통위 의장인 한은 총재와 다른 금통위원들 모두 동등한 입장에서 다수결로 기준금리를 결정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한은 총재만 외부와의 소통에 나서면 마치 총재 개인의 입장이 다른 금통위원보다 더 큰 비중을 갖고 있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금리 결정에 총재 못지않은 권한을 가진 금통위원들이 직접 시장과의 대화에 나서는 것이 금통위의 협의체적 성격에 걸맞은 소통 방식이다. (금융시장부 한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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