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한국의 거장 홍상수 영화감독이 로카르노 영화제에 출품해 황금표범상을 수상했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말이다. 비슷한 상황이 달리 해석되는 경우에 단골로 동원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 괴물급 고용보고서에도 시장 파장 예전과 달라

지난 6일 발표된 미국의 9월 고용보고서가 이런 사례에 해당할 듯하다. 비농업부문 신규 고용이 시장이 예상한 수준의 두배 가까이 늘어나는 '괴물급'으로 평가받았지만 시장 파장은 예전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부가 지난 주말 발표한 미국 9월 비농업 부문 고용은 33만6천명 증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들의 예상치인 17만명 증가의 거의 두 배 수준을 기록했다. 9월 고용은 지난 12개월 동안의 월평균 고용인 26만7천명도 크게 웃돌았다. 직전 두 달인 8월과 7월 수치도 각각 22만7천명, 23만6천명으로 상향 수정돼 총 11만9천명 상향 조정됐다.

9월 실업률은 3.8%로 직전월과 같았으며, 시장이 예상한 3.7%를 0.1%포인트 웃돌았다. 시간당 임금은 전달보다 0.2% 오르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올랐다. 이는 모두 시장이 예상한 0.3% 상승과 4.3% 상승을 밑돈 것이다.



<미국의 비농업부문 신규고용 추이:인포맥스 제공>

예전의 경우 이런 강도의 고용지표 호전이라는 호재는 미국 뉴욕증시 등 위험자산에는 되레 악재로 작용해 왔다. 고용지표 호전 등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매파적인 행보를 한층 강화할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되면서다.

실제 시장은 연준이 매파적 행보를 더 강화할 것으로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 선물 시장은 연준이 11월에 금리를 올릴 가능성을 27.1%로 반영했다. 이는 일주일 전의 18.3%보다 큰 폭으로 높아진 수준이다. 금리 동결 가능성은 72.9%로 일주일 전 수준인 81.7%보다 낮아졌다. 연준의 11월 금리 인상 가능성이 이전보다 커졌다는 의미다. 다만 절대 수준만 보면 여전히 금리 동결 전망이 더 강한 상황이다.

이런 전망을 바탕으로 뉴욕 금융시장에는 위험선호 심리가 빠르게 소환됐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288.01포인트(0.87%) 오른 33,407.58로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전장보다 50.31포인트(1.18%) 상승한 4,308.50으로, 나스닥지수는 전장보다 211.51포인트(1.60%) 오른 13,431.34로 장을 마감했다

◇ 괴물급 고용보고서, 연준 추가 금리 인상 정당화할 정도는 아니다

일부 시장 참가자들은 뉴욕증시 참가자들이 '괴물급'이라고 평가받는 비농업부문 신규 고용 증가가 연준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정당화할 정도는 아니라고 평가한 영향이라고 풀이했다. 고용 지표의 전반적인 흐름이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늦추는 재료가 될 수는 있지만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들은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이 시장의 예상보다 큰 폭으로 늘었지만, 시간당 임금이 시장의 예상보다 덜 올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준이 고용 지표에 집착한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고용 호조가 임금 상승을 통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의 확대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엄청난 신규 고용 증가에도 임금 상승세가 꺾였다는 점에서 탄탄했던 미국의 고용 시장도 이제 정점을 지나고 있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미국 국채 시장도 처음에는 화들짝 놀랐다가 곧 좀 더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괴물급 고용보고서가 발표된 직후 미국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단숨에 4.86%까지 오르고, 30년물 금리도 장중에 5%를 웃돌며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2년물 국채금리도 한때 5.2%까지 올랐다. 이후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전 거래일 3시보다 6.5bp 오른 4.780%에 거래됐고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수익률은 전일 3시보다 3.0bp 오른 5.071%를 기록했다. 국채 30년물 수익률은 전장 3시보다 5.1bp 상승한 4.938%로 호가를 낮췄다.

채권시장 참가자들도 임금 상승률이 예상보다 둔화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고용 시장이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소비자물가지수(CPI) 등 인플레이션 지표를 더 확인하고 가야 한다는 신중론도 강화된 모습이다.

◇ 연준 되레 양적긴축 중단 선언할 수도

특히 연준이 양적긴축(QE)를 곧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미국채 장기물 수익률이 단기간에 너무 가파르게 오르면서 지역 은행은 물론 대형 은행들도 감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경우 보유 채권 포트폴리오 손실이 이번 분기에 크게 확대될 위험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BofA의 2분기 말 기준 채권 포트폴리오 6천140억달러에서 평가 손실만 1천58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10년물 국채금리가 3분기에 4.5%로 0.5%포인트 이상 오른 점을 바탕으로 추산한 결과물이다. BofA의 채권 손실 규모는 3분기에 100억~150억달러 추가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지역은행이나 보험회사 등은 BofA보다 사정이 더 열악할 수도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보험사의 경우 초장기물 편입 비중이 높아 일부 보유 자산 가치가 거의 반토막이 났을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됐다. 투자 전문 매체인 마켓워치는 지난 3일(현지시간) 기준으로 2020년 봄에 발행된 30년 만기 미국 국채에 1.25% 쿠폰을 입력하면 달러당 46센트에 거래되는 것으로 나타난다면서 이는 역사상 가장 낮은 가격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초장기물이 처음 발행되었을 때 매수했을 가능성이 있는 은행 및 보험 회사와 같은 투자자의 경우, 장부가액으로 50% 이상의 손실을 봤을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지난 한주에만 20bp 이상 올라 지난 7월 이후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30년물 국채금리도 한 주간 23bp가량 올라 올해 들어 최대 주간 상승률을 나타냈다.

연준이 조만간 미국 국채 매도를 통한 양적긴축(QE)을 중단하거나 은행 시스템의 초과 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 지급을 중단할 수도 있다고 점쳐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미국채 급등에도 달러 인덱스 하락…주간 단위로 12주만에 약세

조만간 실리콘밸리은행(SVB)이 갑작스럽게 파산했던 것처럼 무슨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증폭되고 있다. 이런 위기감을 반영한 탓인지 미국채 수익률 급등에도 미국 달러화 가치는 되레 하락했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 인덱스는 '괴물급' 고용보고서 발표 이후 전장 106.342보다 0.24% 하락한 106.083을 기록했다. 주간 단위로는 0.10% 하락하며 12주만에 약세로 돌아섰다. 달러 인덱스는 지난 7월18일 장중 한때 99.554를 찍은 뒤 주간 단위로 무려 11주 동안이나 줄기차게 오르기만했다.

월가는 '무엇인가는 깨질(something breaks)' 때가 됐고 연준도 수수방관하지 못할 것이라는 희망을 본 듯하다. '괴물급' 고용보고서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풀이되면서 다른 파장으로 이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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