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17일 오후 1시4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24호.

법정 오른편에 놓인 TV 화면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예상치 못했던 이 회장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화면을 쳐다보고 있던 기자들이 흠칫 놀랐다.

이날 오전 10시에 시작해 11시50분께 휴정한 재판은 오후 2시 재개될 예정이었다. 그때까진 아직 20분가량 남은 상황.

이 회장은 당연히 막판까지 변호인단과 시간을 보내다 정시에 입장할 걸로 예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회장은 아무도 없는 법정에 혼자 먼저 들어와 오후 재판을 준비했다.

잠시 여유 시간도 가졌다. 법원 직원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오전 내내 굳어있던 표정을 잠시 풀었다. 목이 타는 듯 물을 몇 번 마셨고, 눈이 건조한 지 안약도 두어 차례 넣었다.

이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건 이날이 검찰의 구형과 이 회장의 최후 진술이 있는 결심 공판이었기 때문이다.

결심 공판 출석하는 이재용 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이날 이 회장 등의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 결심 공판을 진행했다. 2020년 9월 검찰의 기소 이래 106번째 공판기일이다.

전 국민의 관심이 높고 취재 열기도 뜨거워 법원 측에서 본법정 인근에 중계법정을 따로 마련했다. 통상 사람이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될 때 해주는 것이다. 이에 화면을 통해 법정 안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다만 음성은 마이크를 켜고 말하는 경우에만 공유됐다.

이 회장은 법정 안 모습이 중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보였다. 자연스럽게 쓰레기통으로 걸어가 다 쓴 안약을 버렸고 립밤도 꺼내 발랐다. 법원 직원과 대화를 나눌 땐 방청석에 잠시 엉덩이를 붙이기도 했다.

짧은 휴식이 끝나고 재판장과 부장판사들, 검사들, 피고 측 대리인들이 모두 입장했다. 이 회장은 변호인단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오후 재판이 속개됐고, 변호인단의 최종 변론이 4시간 넘게 이어졌다.

이 회장은 오후 내내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유지했다. 덤덤하게 정면을 응시할 뿐 좀처럼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움직임도 거의 없었다. 간혹 두 손을 모으거나 마른세수를 하듯 목을 훑는 게 전부였다. 잠시 턱을 괴거나 이마를 짚었다가도 금세 자세를 바로 고쳤다. 오후 4시 반에 휴정했을 때도 잠시 법정 밖으로 나갔다 금방 복귀했다.

이날 이 회장은 오전 2시간과 오후 4시간 반, 총 6시간 반이 넘도록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저녁 6시40분이 넘어서야 최후 진술을 위해 입을 뗐다. 최후 진술 직전 자리 정돈을 위해 잠시 휴정했을 땐 긴장한 듯 물을 마셨고, 불편했는지 의자도 한번 교체했다.

준비해 온 종이 세 장을 꺼냈다. 차분하게 읽어 내려갔지만 중간중간 목이 메는 듯 말을 더듬었다. 부친 이건희 선대회장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는 내용과 다른 피고인들에 대한 선처를 부탁하는 부분을 읽을 때는 목소리가 더욱 떨렸다.

이날 이 회장은 '긴 하루'를 보냈다. 오전 9시40분에 도착한 법원을 오후 8시가 돼서야 나설 수 있었다.

근데 이게 이날 하루가 아니었다. 2020년 9월 검찰의 기소로 시작된 이번 재판은 3년 2개월, 106회 공판기일을 거쳐서야 가까스로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삼성은 이렇다 할 대형 인수합병(M&A) 하나조차 하지 못했다. 불확실한 경영환경으로 모든 기업이 눈에 불을 켜고 미래 먹거리를 찾는 상황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그 한가운데 위치한다"며 "생성형AI 기술이 전 세계 사업에 영향을 끼치는 등 상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기술혁신 이뤄지고 있다"는 이 회장의 말을 허투루 들을 일이 아니다.

이르면 내년 초 1심 판결이 나오겠지만, '끝'이 언제인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날 검찰은 이 회장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고,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실질적인 이익이 귀속됐다며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기업금융부 유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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