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주 금요일(11월24일) 오후 5시가 넘어 LG에너지솔루션이 공시를 하나 했다. 통상 투자자와 언론의 주목도가 낮은 금요일 늦은 시간엔 기업에 불리한 '올빼미 공시'가 종종 올라온다.

제출인은 권영수, 공시명은 '임원·주요주주 특정증권 등 소유상황보고서'였다. 권영수 부회장이 보유한 LG에너지솔루션 주식 수에 변동이 생겼다는 뜻이다.

2천주 장내 매도였다. 보유하고 있던 회사 주식 전량을 팔았다.

처분일은 공시 사흘 전인 21일로 LG에너지솔루션이 이사회를 열고 '2024년 임원 인사'를 발표(22일)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해당 인사에서 권 부회장이 44년간 몸담아온 LG그룹을 떠난다는 사실이 대내외에 공개됐다. 사실상 용퇴가 확정된 뒤 주식을 매도했다고 보기에 무리가 없었다.

주식 거래는 개인이 자유 의지에 따른 것으로, 권 부회장의 결정은 존중받아야 한다. 속내까진 모르지만 급하게 손실까지 감수하며 주식을 판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LG에너지솔루션에서 용퇴한 권영수 부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하지만 그간 권 부회장이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CEO)로서 보여온 행보와 최근 배터리업계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다소 의외란 평가가 많다. "LG에너지솔루션이 세계 최고의 배터리 회사가 되는 여정을 진심으로 응원할 것"이라던 '마지막 말'과 달리 '떠나기 직전 행동'은 회사를 위한 결정으로 보이지 않았다.

권 부회장은 지난 2년간의 임기 중 두 차례에 걸쳐 LG에너지솔루션 주식을 사들였다. 책임경영 강화 목적이었다. 지난해 4월 주당 42만원에 1천주를 매입했고, 올 3월 추가로 1천주를 샀다. 1년 새 주가가 많이 올라 주당 57만2천800원을 줬다.

당시 LG에너지솔루션은 참고자료를 내고 "권 부회장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회사 주식을 매입하며 책임 경영 실천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고 설명했다. "회사의 미래 고객가치를 높이고 주주 신뢰를 강화하는 데 더욱 노력하겠다는 의미"라는 부연도 빼놓지 않았다.

권 부회장은 배터리업계 선도기업 LG에너지솔루션의 CEO인 동시에 한국배터리산업협회 회장이었다. 또한 과거 LG전자에서 재경부문장(사장) 등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냈을 정도로 '숫자'에 밝기로 유명하다. 배터리산업과 재무를 모두 꿰고 있는 인물이란 얘기다.

CFO 출신 CEO의 회사 주식 매입은 실제로 주주 신뢰 강화와 주주가치 제고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주주들이 기대하는 바람직한 CEO의 모습이었다.

그랬던 그가 용퇴 결정과 동시에 냉큼 주식을 처분하자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회사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전기차 수요 둔화에 따른 배터리업계의 불황이 예상보다 더 장기화할 거란 소문은 주주들의 불안을 키웠다.

이는 앞서 설명한 권 부회장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배터리·재무 전문가인 그가 아무 이유 없이 '손절'을 하진 않았을 거란 점이 근거다. 권 부회장의 처분 단가는 주당 43만1천500원으로 평균 취득 단가 49만6천400원을 한참 밑돈다. 2천주를 사고팔았으니 손해 본 금액이 약 1억3천만원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배터리 수요 감소로 업계 전반이 뒤숭숭한 상황이다. 지난 7월 말 62만원을 찍었던 LG에너지솔루션의 주가가 40만원대 초중반으로 떨어졌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하는 증권사 리포트가 잇따랐다.

물론 더 이상 CEO가 아니니 책임경영에 대한 의무감을 내려놓을 수 있다. 회사와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 새로 부임하는 차기 CEO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결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급하게 주식을 처분해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 '44년간'의 LG맨 생활을 마치는 '아름다운 용퇴'에 옥에 티로 남을 듯하다. (기업금융부 유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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