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포스코그룹이 연일 동네북 신세가 되고 있다. 차기 회장 인선을 둘러싸고 경찰 수사 소동까지 불거지면서다. 지난해 사외이사들을 동반한 '캐나다' 이사회가 적절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다.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린 내외부 인사들은 해당 쟁점이 인선에 파장을 몰고 올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작 포스코가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뒷전이 됐다. 포항 영일만의 모래사장에서 오늘날 포스코의 터전을 다진 고 박태준 회장이 추상같이 나무랄 법한 장면이다.

  

◇ 포스코 일군 박태준이 진보·보수 양진영에서 헌사를 받는 까닭

대한민국이 낳은 거인 청암 박태준을 기억하는 장년층에게 포스코는 포항제철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줄여서 '포철'이라고 불렀던 당시에는 회사 로고도 알파벳'Z'를 변형시킨 형태였다. 대일청구권자금을 바탕으로 세운 이전의 포철, 혹은 지금의 포스코는 세계 최고의 조강 능력을 갖춘 제철그룹이면서 국내 재계 5위로 발돋움했다. 회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관련 주식을 단 한주도 보유하지 않았던 박태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을 것처럼 서로를 저주하는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이 박태준에 대해선 예외적으로 영웅적 헌사를 아끼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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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6월 당시 박태준 포항제철 대표가 국내 첫 철강 생산을 위한 포항 1고로를 가동하고직원들과 환호하는 모습: 연합뉴스 제공>

대하소설 '태백산맥'으로 진보 진영의 문단을 이끄는 소설가 조정래가 대표적인 경우다. 조정래는 10권으로 구성된 대하소설 '한강'을 통해 거인 박태준이 포항제철을 어떻게 일궜는지를 절창으로 풀어냈다. 박태준이 정치적 망명 같은 일본 생활 끝에 모친상을 치르기 위해 지난 1994년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할 때도 작가 조정래는 부인 김초혜 시인과 부부 동반으로 한달음에 마중을 나왔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는 한국적 현실에서는 낯선 장면이었다.

박태준은 가족 가운데 누구도 포철 혹은 포스코에 입성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은 부산으로 편입된 인근 양산 임랑에 있던 가족 친지들이 아예 포항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던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이런 박태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2세들에게도 뚜렷한 울림을 남겼다. 뉴욕 화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유아 화가가 대표적이다. 화가 박유아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미국에 입양됐지만 국적도 얻지 못한 이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뉴욕 현지에서 목소리를 높이고,무려 50명에 이르는 입양인을 일일이 인터뷰하고 연작시리즈 형태로 초상화를 그린 점은 현지 화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명품 제철기업을 일군 박태준 회장의 2세 다운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 내외부 인사가 아니라 박태준의 꿈을 계승할 후보 찾아야

회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바로 이런 박태준의 정신적 DNA를 계승할 회장 후보가 누구인지를 가려내는 데 있다. 내부 인사 인지 외부 인사인지 여부가 중요한 잣대는 아니라는 의미다. 불모의 땅에서 산업의 쌀인 철강생산을 통해 제철보국을 이뤘던 박태준의 꿈을 계승할 후보가 누군지 가려내야 하는 게 후추위의 임무다.

포스코는 스테인리스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세계적 경쟁력을 잃고 있다. 중국 등 후발 제강 기업들의 추격이 그만큼 거세다는 의미다.

이제부터 포스코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는 전통적인 제조업 기업인 제철소를 얼마나 스마트하게 변모시킬 수 있는지가 될 수 있다. 당장은 전 세계 어느 기업도 이룩하지 못한 진정한 스마트팩토리를 구현할 수 있는지가 차기 회장의 핵심 과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팩토리 부문은 아직도 진정한 통합제어가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 포스코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공정을 통합제어하고 하나의 '머신(machine)'처럼 작동할 수 있는 진정한 스마트팩토리가 포스코를 통해 실현된다면 4차 산업혁명의 벼리는 우리 산업계가 잡을 수도 있다. 차기 회장의 핵심 임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태가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청암 박태준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모두 자문해 보자. (편집해설위원)

ne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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