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억 칼럼> '그 느낌 아니까~'
<최기억 칼럼> '그 느낌 아니까~'
  • 승인 2013.10.2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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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88 서울올림픽이 개최될 무렵 모 공기업에서 1년여 근무했었다. 당시 전국이 단풍놀이로 들떴지만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은 16년 만에 처음 부활한 국정감사 준비로 연일 눈코 뜰 새 없었다.

국회의원의 요청자료는 정책 현안에서부터 시시콜콜한 지역구 관련 자료까지 산더미처럼 많았다. 입사 직후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것도 모르던 신출내기 직원 처지에서 해당 부서에 떨어진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에 티끌만큼이나마 참여하면서 교과서에서만 읽던 삼권분립(三權分立)의 현장을 어렴풋이 느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기관장은 업무 현안 파악과 예상 쟁점에 대한 준비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연일 시나리오별로 예행연습에 열중했고, 임원들은 할당해서 여야 의원과 보좌관을 만나고 국감현장에서 나올 예상 돌발 질문을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이런 과정에서 부서장의 지시에 따라 배당된 요구자료를 일목요연하게 한 장짜리 표로 정리하는 일에 매달려 수차례 재작성하며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새롭다.

국정감사가 진행된 당일의 긴장감은 대단했다. 의원들의 검은색 승용차가 속속 당도하고, 신문 방송 차량과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 원고 작성 이후 팩시밀리를 먼저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달려가는 취재 모습은 구경거리였다.

의원들의 날이 선 질의와 기관장에 대한 호통은 가끔 국감장 밖에까지 들렸다. 배석한 간부들은 연신 진땀을 흘리며 자료를 들고 국감장 뒷문을 들락거렸다. 하지만 연일 야근을 하며 준비했던 그 많은 자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이 지나가고, 일부 함량 미달의 폭로와 겉핥기식 호통이 사내 방송을 통해 흘러나올 때에는 소속기관의 직원으로서 자괴감도 심하게 느꼈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까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 한은 등 경제부처 국감이 이어지고 있다. 관련 보도를 보면서 25년 전 피감기관의 풋내기 직원 신분에서 경험했던 '그 느낌'이 아스라이 전해온다.

그동안 언론과 시민단체는 일부 국감 무용론 속에 상시 국감 체제로 전환하자고 끊임없이 주장해왔지만, 올해는 일부 상임위의 국감이 상당히 전문적이고 질적으로 개선되는 조짐이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특히 기재위, 정무위 소속 의원들은 현안에 대한 사전 조사와 깊이 있는 공부로 피감 기관들도 비판에 공감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질타보다는 정책성 주문이 많은 점도 최근 국감의 새로운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는 후문이다.

올해는 다만 사회적 화두가 된 경제민주화 분위기를 빌미로 현안과 관련 없는 기업인을 대거 증인으로 출석시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권력의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에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고, 국감 제도 자체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작업은 계속 진행될 것이다. 의원들은 정책 지적과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피감기관들도 비판과 문책을 더는 겁내지 말아야 한다.

정치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100년 전 그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인간이든 조직이든 견제가 없으면 교만해진다'고 했다.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올해 국감이 마무리되는 기간에 각 부처와 공기업 임직원들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선량들의 질타와 비판에 교만하지 않게 대응하는 수고를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취재본부장/이사)

tscho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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