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금융기관마다 새해 대응 전략 짜기에 골몰하느라 세밑에 만난 금융계 무림(武林)의 고수들은 모두가 심각한 얼굴이었다.
S은행 A본부장은 새해 업황을 묻자 "입에 풀칠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영학에서 통상 '전략' 보다 '행동'을 강조하지만, 내년은 섣불리 행동에 나서기보다는 블랙 스완(Black Swan)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를 잘 살피는게 우선 중요하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수익을 더 올리려고 공격적으로 나설 계획은 없고 '안전모드'로 간다는 얘기다.
그는 살아갈수록 경험과 학습으로 미래를 더 잘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내년은 모두가 처음 경험하는 전인미답, 예측 난망의 시간이라고 걱정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반복된다(History repeat itself)는 얘기가 틀렸고, 내년은 모든 게 처음 만들어지는 역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선방한 것으로 평가받는 H은행 B본부장은 내년에 불확실성이 애초 세 개(유럽,미국,선거)정도 였지만, 연말에 와서 갑자기 한 개(북한)가 늘어나 더 혼미해졌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유로존 사태가 더 악화되는 것을 가장 우려했다. 그는 "국내 금융계가 유럽에서 빌린 자금이 6백억 달러인데 사태 악화시 일부라도 급격히 빠져나가면, 리먼 사태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고, 수출 리스크 때문에 실물 경기가 급랭하고 이란 사태와 북한 리스크까지 겹치면 실업난과 가계부채가 과거와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K은행 C본부장은 이런 분위기를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의식해 위축되는 것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고 걱정했다. 그는 "모두가 경계감으로 '관리모드'로 가면 경제의 결과치는 마이너스가 불가피하다"며 "특히 무역비중과 의존도로 볼 때 중국이 미국보다 더 중요해진 상황에서 중국이 성장을 포기하고 '관리 모드'로 들어선 점은 우리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수들은 이런 모든 대내외 상황을 고려할 때 내년에 원-달러 환율이 아래쪽은 하방 경직적이라고 지적했다. 빠져봐야 100원 정도, 반면 일제히 위쪽은 열려 있다고 전망했다. 1,200원 넘어설 공산도 있다는 얘기다. 뚜껑이 열리면 그 위쪽은 전망이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한편 금리는 이런 대내외 분위기를 의식해 복지부동한 한국은행이 '안전 관리 모드'를 핑계삼아 현재의 금리 수준을 쭉 그대로 변동없이 끌고 나갈 공산이 높다고 전망했다.
한국경제는 내년에 상당한 장기(腸器) 대수술을 각오해야 하며, 이후 제자리 찾아가려면 시간 걸릴 것이라는 얘기들이다.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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