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정지서 기자 =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유치를 위한 과당 경쟁으로 시중은행의 편법 영업이 급증하고 있다.

실적 압박 때문에 은행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유치한 고객 계좌 대부분의 가입 금액은 1원에서 1만원으로 사실상 '유령계좌'나 다름없는 상태다.

◇영업점 직원할당 최소 100건…'키인' 시간 확대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NH농협·KEB하나·우리은행 등 주요 은행들은 영업점 직원에게 1인당 100건 이상의 ISA 가입 할당을 내리고, 이달 말까지 채울 것을 지시했다.

고객 유치 할당 목표치가 문서화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내부적으로 실적에 따른 '줄세우기'가 시작된 상황이라 은행원들은 ISA 판매가 시작된 14일 이전부터 예약 가입을 통한 실적 유치에 몸살을 앓아왔다.

특히 국민은행은 영업시간이 지난 오후 6시까지 근무를 연장해 ISA 모집을 독려하고 나섰다.

국민은행의 한 영업점 직원은 "근무시간에 은행 방문이 어려운 고객들을 위해 한시적으로 ISA 관련 업무가능 시간을 늘렸다"며 "고객이 원천징수영수증을 가지고 직접 영업점을 찾아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할당을 채우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은행이 추가 영업을 위한 '키인' 시간을 늘렸다. 새벽부터 밤까지 전산을 열어 고객 유치를 요구하는 은행도 나왔다. 은행 영업점의 일부 창구는 전용 ISA 고객 전산정보 입력 창구가 돼 사실상 정규 업무시간에는 폐쇄된 창구나 마찬가지인 곳도 태반이다.

농협은행의 한 직원은 "내부적으로 전산을 밤까지 열어 사실상 초과근무가 불가피한 상태"라며 "대부분의 은행 상황도 마찬가지지만, 농협은 특히 초기 선점한 고객이 많아 이들의 전산 입력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울상짓는 은행원…불완전판매 화살은 직원에게

극심한 실적 압박 속에 은행원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불완전판매에 대한 두려움이다.

할당을 채우고자 가족과 친구, 친지 등 지인 영업을 총동원했지만, 지인 영업은 현실적으로 지점에서 진행되기 어렵다. 지인 영업의 대부분은 고객이 가입에 필요한 소득 증빙 자료와 신분증 복사본을 은행으로 보내면, 은행원이 대신 가입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실상 불완전판매인 셈이다.

전일 금융감독원은 은행권 준법감시인을 불러 ISA 불완전판매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이를 예방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미 시중 은행들은 내부 공문을 통해 전 영업점 직원에게 ISA 계좌의 완전 판매를 강조했다.

하지만 은행원들은 고객 유치를 위해 전산 입력 시간을 늘려주며, 완전판매를 강조하는 경영 방침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KEB하나은행의 한 영업점 직원은 "겨우 지인들에게 가입자료를 받아놨는데, 완전판매를 강조하는 내부 공문을 보니 허탈했다"며 "제대로 위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입된 ISA 계좌의 책임은 결국 고객을 유치한 은행원 혼자 지게 될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의 한 영업점 직원은 "지인 영업은 어차피 고객이 내방한 CCTV 영상 등은 없으니 카톡이나 전화 녹음 등 완전 판매를 증명할만한 증거를 남기기도 한다"며 "실적과 불완전판매라는 두 가지 기준을 동시에 내세우는 것은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만능통장, 무능통장 될라…금융당국 취지 무색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시작된 ISA 판매가 과당 경쟁으로 얼룩지자 금융권 안팎에선 ISA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국민 재산증식 프로젝트'의 하나로 금융당국이 추진한 ISA의 본질이 왜곡되고 있어서다.

실제로 과당 경쟁으로 번진 은행권의 평균 계좌 가입 금액은 30만원 안팎으로 증권사의 1/10에 불과한 상태다. 가장 많은 계좌를 유치한 NH농협은행의 평균 계좌 가입 금액은 3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ISA가 금융개혁의 연장선으로 해석되다 보니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입장에선 실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 증권사 은행업 연구원은 "일본에서 먼저 도입된 ISA의 경우 현재 가입 고객의 절반 이상이 시판 처음에 가입한 고객이다 보니 은행을 중심으로 과당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며 "초반 고객 선점보다 이후 수익률 관리에 대한 고민은 사실상 은행의 관심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0.1~0.7% 수준의 판매 수수료만 받는 은행 입장에선 고객의 수익보다 고객 유치가 관심인 셈"이라며 "은행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ISA를 도입한 정책의 가장 큰 허점"이라고 설명했다.

한 은행의 고위 임원도 "계열사 직원을 동원한 사실상 의무 가입은 대부분 1만 원짜리 이하 계좌"라며 "초기 유치 경쟁이 끝나고 실제로 운용되고 있는 계좌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ISA에 대한 실효성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정책적인 입장에서 금융회사 CEO에게 ISA는 힘들지만 잘 넘어야 하는 산"이라며 "이제는 ISA가 만능통장이 되려면 가입 고객의 수익률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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