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강연회 "대기업 금융, 농협 정체성과 충돌"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농협은행이 조선·해운 등 대기업 구조조정 여파에 휘청이자 그룹 내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농협중앙회를 비롯한 범 농협 내 금융계열사들도 '농심'을 기반으로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과 위기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지난 17일 본사 대강당에서 모니크 르룩 국제협동조합연맹(ICA) 회장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었다.

이날 강연에는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지주, 농협은행 등 임직원 400여명이 자리를 채웠다.

북미 최대 신용협동조합인 캐나다 데자르뎅 그룹의 회장이기도 한 모니크 르룩은 강연을 통해 금융회사가 '많은(maximum)' 수익이 아니라 '옳은 수준(right level)'의 이익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금융회사를 단순한 수익 규모로 줄 세우는 문화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했다. 지나친 수익 추구가 결국 금융회사의 부실과 직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농협과 같은 협동조합 성격의 금융회사는 다른 금융회사와의 경쟁보단 구성원과 조합원에게 안정감을 주고자 자본 비율을 올려야 한다고 언급했다. 수시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충격과 위기에 대비할 수 있어서다.

강연을 들은 임직원들은 농협은행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대기업 금융을 시작한 농협은행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실에 휘청이는 현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질문이 집중됐다.

모니크 루룩 회장은 데자르뎅 그룹의 경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주요 재정 파트너라고 언급했다. 데자르뎅은 JP모건처럼 큰 거래를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처음부터 소상공인으로서 거래했던 고객이 큰 사업을 하게 될 경우에만 제한된 범위에서 대기업금융을 취급한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금융을 취급하는 것은 다른 시중 금융기관이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날 강연을 들은 범 농협 임직원들은 농협은행의 지나친 대기업 금융이 현재의 부실을 초래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조선업 관련 여신 대부분이 선수금환급보증(RG)이라는 점도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손꼽혔다.

한 농협은행 관계자는 "RG는 산업은행 등 국책기관이 해야 할 영역이지 농협은행이 할 부문이 아니었다"며 "기업 금융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던 2010년 전후 RG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지금의 화를 자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호황기를 누리던 조선사의 RG가 은행에 괜찮은 수익원이라는 일반화된 생각이 급격히 여신을 늘리는 배경이 됐다"며 "이 부분에 대한 전문가 없이 그저 금융상품으로 RG를 취급한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농협은행 관계자는 "RG의 문제를 인식했을 땐 이미 산업은행이나 금융당국이 여신 축소에 부정적이었던 시기"라며 "지금은 조선·해운업 등 취약업종에 대한 신규 여신을 자제하기로 방침이 정해졌지만, 기존에 대기업 중심으로 편중된 여신은 좀 더 조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역시 대기업 구조조정에 휘청인 농협은행의 문제를 파악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한 상태다. 최근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은 농협은행의 가계 및 기업대출 리스크관리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기도 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농협은행이 부실채권이나 편중 여신 관리를 위한 시스템을 충분히 도입한 상태지만, 경험과 노하우는 아직 부족해 보였다"며 "특히 시스템을 도입하기 전 발생된 대부분의 부실 여신에 대해서는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어 좀 더 정밀한 점검이 필요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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