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엄재현 기자 =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금융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배분해 부실기업의 생명을 연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국책은행의 금융지원 규모를 축소하고, 기업 구조조정이 시장 위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KDI는 11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에 국책은행이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책은행 지원기업, 워크아웃 시점 늦고 자금지원 규모는 컸다

KDI는 2008년 이후 워크아웃이 개시된 39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국책은행의 워크아웃 개시 시점이 일반은행에 비해 더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2008년 이후 일반은행이 주채권은행인 기업의 워크아웃 개시시점은 한계기업 식별 시점 대비 평균 1.2년 빠르지만, 국책은행은 평균 1.3년 늦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국책은행의 경우 일반은행보다 평균 2.5년 지체된 상태에서 구조조정이 시작된다는 분석이다.

KDI는 한계기업 식별 시점이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상태로 3년간 지속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기간이 3년이 넘으면 한계기업으로 식별한 셈이다.

또 KDI는 국책은행이 부실이 감지되기 시작한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확대하면서 워크아웃 개시시점을 지체시켰다고 지적했다.

결국, 국책은행이 기업 부실에 대해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요구하기보다 회생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에 의존해 구조조정을 늦추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KDI의 분석이다.

◇국책은행, 실질적으로도 기업의 구조조정에 긍정적 영향력 없어

KDI는 국책은행이 워크아웃 기업의 실질적인 구조조정에도 긍정적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DI의 분석 결과 국책은행이 주채권은행인 경우 일반은행보다 워크아웃 기업의 자산 매각, 인력 구조조정에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은행이 주채권은행인 기업은 70% 정도가 워크아웃 시작 3년 이내에 자산매각을 시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국책은행이 주채권은행인 기업들은 같은 기간 33%의 기업들이 자산매각에 나섰다. 인력 구조조정의 경우도 국책은행이 주채권은행인 기업들이 일반은행보다 구조조정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이 같은 국책은행의 구조조정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는 회귀분석 결과에서도 드러난다는 것이 KDI의 진단이다. KDI의 회귀분석 결과 자산매각과 인력 구조조정 성과 모두 일반은행이 주채권은행이면 국책은행보다 5% 수준에서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책은행이 주채권은행일 경우 통제변수가 같다는 가정 하에 일반은행에 비해 자산매각과 인력 구조조정 가능성이 각각 46.5%포인트, 47.5%포인트 감소했다는 결과도 같이 제시했다.

특히, 건설업과 조선업 등 산업 특성을 고려한 변수를 사용해도 유사한 실증 분석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KDI의 지적이다.





<국책은행과 일반은행의 기업 자본과 인력조정 강도(자료: KDI)>

◇국책은행 금융지원 축소해야…시장 위주 구조조정 유도 필요

KDI는 기업 구조조정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국책은행이 부실 자산을 독립된 기업구조조정 회사에 매각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채권 구성이 복잡한 기업은 국책은행이 구조조정 합의를 주도할 능력이 부족하고, 도덕적 해이도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KDI는 "금융당국은 국책은행이 채권단의 이해 상충문제에서 자유로운 독립 기업구조조정회사에 부실자산을 매각하도록 해야 한다"며 "기업 구조조정이 시장에서 진행되도록 유도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KDI는 금융당국이 과도하게 확대된 국책은행의 금융지원 규모를 점진적으로 줄여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도 강조했다.

국책은행이 보다 더 엄격한 기업실사를 통해 워크아웃이 어려운 부실기업을 법원의 회생정리 절차로 신속하게 유도하고,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지원으로 정책 방향을 집중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KDI는 "부실화된 중소기업은 채권단 구성이 대기업보다 단순하고 구조조정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작다"며 "부실기업 매각시장도 형성되지 않아 국책은행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부문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KDI는 "최근 금융당국이 발표한 국책은행 역할 조정 방안에서 신속한 기업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정책과 시장실패가 존재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들은 빠르게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jheom@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