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은행의 상반기 실적이 좋다고 분위기가 흉흉한데, 그대로 두면 은행 영업 환경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금융권에 경고를 보냈다. '이자놀이'와 같은 손쉬운 영업만 하다가는 공멸할 수 있다는 강도 높은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와 동시에 금융은 무엇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금융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도록 개혁에 시동을 걸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금융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금융이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최종구 위원장은 26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기자간담회를 하고, '생산적ㆍ포용적 금융'이라는 화두를 꺼내 들었다.

리스크와 보상에 대한 선별적 기능을 통해 한정된 자금을 공급해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배분하게 하는 금융의 원칙에 따라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분야로 돈이 흘러들어 가게 함으로써 경제 전체에 보탬이 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금융에 대한 접근성이 차단된 소외계층도 금융을 활용할 수 있는 통로와 기회를 넓혀 줌으로써 다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하게 하겠다는 얘기다.

최 위원장은 "포용적 금융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우리 사회ㆍ경제의 선순환 구조와 생산적 금융을 완성하는 마지막 연결고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러한 최 위원장의 생각은 일자리 중심의 경제와 소득주도 성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의 틀을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패러다임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부채양산' 금융시스템 방치하지 않는다

최 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시중은행의 손쉬운 영업 행태를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과거에는 국민은행만 가계대출 위주로 영업해 왔지만, 현재는 은행 간 구분이 없다"면서 "모든 은행이 국민은행화 됐다"는 말까지 쏟아냈다.

그러면서 "이러한 현상이 바람직한가. 이대로 두고 보는 게 감독 당국의 역할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도 했다.

주택담보대출 영업만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는 시중은행들의 행태에 대한 지적이었다.

실제 올해 상반기에만 은행들이 거둔 순이익은 6조 원에 육박했다.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방침에도 시중금리 상승에 편승해 예대 금리 차이를 벌리면서 수익을 극대화한 결과다.

최 위원장은 아데어 터너 전 영국 금융감독청장이 저서인 '부채와 악마 사이에서'에 언급한 과도한 가계대출이 경제적 오염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면서, 주택담보대출에 의존해 전당포식 영업을 하는 은행을 과연 은행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데도 공감한다고 했다.

최 위원장의 이러한 인식은 지난 19일 취임식에서 "부채 확대로 단기적인 호황을 유도하는 소비적 금융은 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1천400조 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에 심각한 부담이 되는 상황에서 부채를 양산하는 금융시스템이 그대로 작동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깊이 담겨 있다.

최 위원장은 금융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리스크를 가계와 기업에 전가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금융이 아닌 리스크를 적절히 떠안고 자금을 공급, 중개할 수 있는 금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자금이 생산적 분야보다는 부동산 투자와 금융회사 간 레버리지 거래 등에 과도하게 집중되면 거시경제의 취약성을 초래한다"는 그의 지적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면서 최 위원장은 시스템 전환을 위해 금융당국이 관치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정 부분 관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금융시스템이나 은행 영업을 시장에만 맡겨 두는 게 시장주의는 아니다. 시장주의자만 가득 차 있으면 안 된다"면서 "현재 금융시스템을 그대로 두면 과도하게 부채를 양산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올해 하반기에 금융업권별 자본규제 등을 전면 재점검해 자금이 생산적인 분야로 지원될 수 있도록 정비하겠다면서 이러한 것을 새로운 관치라고 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포용적 금융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 구축

최 위원장이 제시한 또 다른 화두인 포용적 금융은 '금융 접근성 확대→취약계층의 금융부담 완화→가처분소득 증가를 통한 경제 활력→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 확충'으로 요약된다.

그는 현재 소외계층이 금융시스템 자체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고 있는 것을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은행 등 금융권이 고소득ㆍ고신용자에게만 집중하고 저소득ㆍ저신용자에게 금융 접근의 기회 자체를 주지 않으면서 고금리대출 위주의 소비적 금융에만 함몰된 탐욕적 영업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그는 금융 이용 기회가 제한되고 있는 계층뿐 아니라 제도권 금융시스템에서 탈락하는 계층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법정 최고금리를 24%로 낮춰 내년부터 전격 시행하고, 제도권 금융시스템에서 탈락해 장기간 추심으로 고통받는 장기연체자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공공ㆍ민간부문의 소멸시효완성채권을 신속히 정리하겠다는 것도 모두 이를 고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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