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미란 기자 = 한국거래소가 추진하던 채권 장내거래 플랫폼 도입이 채권시장 반대로 무산 위기에 처했다. 거래소는 채권 거래를 장내화해 거래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브로커의 중개 없이는 장외 채권 거래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입장이 부딪히자 금융위원회는 최근 채권시장의 수요 부족을 이유로 거래소의 플랫폼 도입을 연기할 것을 주문했다.

28일 채권시장에 따르면 거래소는 지난 6월 채권 장내거래 플랫폼 구축을 위한 설명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거래소는 주식처럼 채권 거래도 장내화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고 지표물 거래만 장내거래가 이뤄지는 것을 모든 채권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국고 지표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채권은 투자자들과 증권사 브로커들이 채권 장외거래 메신저인 케이본드(K-bond)에서 호가를 주고받은 후 예탁결제원의 동시결제 시스템에서 결제하는 방식으로 거래하고 있다.

거래소는 호가 제시부터 결제까지 한 번에 진행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개발해 왔다. 주식시장처럼 투자자들이 쉽게 호가를 얻고 거래도 편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이렇게 되면 장외채권을 만기까지 가져가지 않고 중도에 사고파는 '손바뀜 시장'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도 했다.

거래소는 아울러 장내거래 플랫폼을 통해 거래 투명성도 높이겠다고 밝혔다.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그러나 장외채권은 종류가 다양하고 복잡해 브로커의 개입 없이는 거래가 체결되기 어렵다며 도입을 반대했다.

채권시장의 한 관계자는 "장외채권은 종류가 너무 많아 주식처럼 '일물일가'(一物一價)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브로커의 중개가 없으면 호가가 너무 떨어져 있어 거래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국고채 1대 1 거래 시스템이 있지만 지표물만 거래될 뿐 비지표물은 거의 거래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거래소가 추진하는 채권거래 플랫폼이 현재 채권거래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거래소는 브로커의 중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채권거래 플랫폼에 메신저 기능을 추가하기로 했다.

채권시장의 다른 관계자는 "메신저로 협의한 후 거래하면 지금 시스템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채권거래 시스템도 메신저에서 협의하지만 호가가 실시간으로 공시되고 있어 불투명하지 않다"며 "장내거래인 주식도 불공정거래가 발생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장내 거래화한다고 거래의 투명성이 무조건 높아지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거래소의 채권거래 플랫폼이 증권사 브로커들의 수익을 잠식할 뿐 새로운 시장을 만들지는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금융위는 이처럼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거래소에 채권시장의 찬성을 얻을 때까지 플랫폼 도입을 연기하라고 주문했다. 사실상 중단하라고 지시한 셈이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거래소는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채권거래 플랫폼도 도입해 자율 경쟁을 유도하겠다고 밝혔지만 거래소가 증권사에 비해 우월적 지위를 점하고 있어 증권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가입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래소의 대주주는 증권사들인데 증권사들이 반대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다"고 했다.

mr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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