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한용 기자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묵언(블랙아웃) 기간에 금기로 여겨지는 통화정책 관련 언급을 내놔 조직 안팎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통화정책방향 금융통화위원회 1주일 전부터는 임직원이 통화정책과 관련한 언급을 내놓지 않도록 하는 블랙아웃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한은은 시장에 혼선을 주지 않는다는 취지로 2010년 6월 도입했다

금통위원은 물론 집행간부와 감사를 포함한 한은 전 구성원이 블랙아웃 제도 준수 대상이다.

'서로 그렇게 해야 할 뜻을 이해하고 지킨다'는 의미에서 양해사항(items of understanding)의 형태로 제도를 도입한 만큼 묵언 기간에 통화정책 관련 발언을 해도 별도의 제재 규정은 두지 않았다.

한은 구성원들은 그간 묵언 기간에 공적인 자리는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도 통화정책 관련 언급을 삼가는 것은 물론 아예 문제의 소지가 있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등의 방식으로 이 제도를 철저히 준수해 왔다.

이주열 총재는 그러나 전일 중구 한은 본부에서 열린 임지원 신임 금통위원 취임식에 참석해 통화정책 관련 내용으로 볼 수 있는 언급을 내놨다.

그는 "지난해 이후 우리 경제가 비교적 견실한 성장세를 지속해오고 있지만, 대내외 여건이 만만치 않아 앞으로 경제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고 최근 경제 상황을 진단했다.

이주열 총재는 "대외여건 중에선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 미·중간 무역갈등 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며 "일부 취약 신흥국의 금융불안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내로 눈을 돌리면 고용 상황이 좀처럼 개선되지 못해 걱정스럽다"며 "한은은 경기와 물가와 금융안정을 함께 지켜나가야 하는 어려운 책무를 안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주열 총재의 이런 발언에 시장에선 '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블랙아웃 제도는 한은 사람들이 일국의 중앙은행 구성원으로서 명예를 위해 스스로 지키는 불문율 같은 것"이라며 "묵언 기간에 한은 총재가 이 정도 수위로 통화정책 관련 언급을 내놓는 것은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극히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한은 실무진들 사이에선 이미 지난 4월 초부터 경기가 꺾일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것으로 안다"며 "어제 이주열 총재 발언에선 경기 하강 가능성과 관련한 다급함이 묻어났다"고 진단했다.

그는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주열 총재 스스로 블랙아웃을 파기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라며 "한은 수장 스스로 묵언 기간에 통화정책 관련 발언을 내놓지 않는다는 약속을 깬 만큼 앞으로 블랙아웃 제도 준수와 관련해 조직 내에서 영이 설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전일을 기점으로 묵언 기간이 시작된 것은 맞지만, 이주열 총재의 발언을 통화정책과 관련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신임 금통위원에게 큰 역할을 당부하는 과정에서 나온 언급"이라며 "신임 금통위원 취임식에서 일반적인 얘기를 원론적인 차원에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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