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권용욱 기자 = '채권왕' 빌 그로스가 업계 최악의 실적으로 고전하고 있다. 한때 가장 잘 나가던 채권왕의 몰락은 현재 불안한 시장의 채권펀드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 소속 CEO에게도 비판받는 '채권왕'

20일(현지시간) 모닝스타에 따르면 야누스 헨더슨에서 그로스가 운영하는 글로벌 무제한 채권펀드(Janus Henderson Global Unconstrained Bond Fund)는 지난 16일 기준 연초 대비 6.6%의 손실을 기록했다. 같은 유형의 펀드 가운데 가장 저조한 수익률로, 최근 1년과 3년 수익률에서도 각각 가장 뒤처졌다.

이 펀드는 지난달에만 2억달러 이상이 환매됐고, 자산규모는 지난 2월 22억4천만달러에서 12억5천만달러로 축소됐다.

그로스는 올해 초순에 유럽시장의 변동성 때문에 실적이 나빴다고 언급한 바 있다. 독일 채권과 미국 국채의 약세 베팅은 충분한 인내심을 가지면 뜻밖의 행운(windfall)을 가져올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지난달 말 펀드는 플러스 수익률을 내며 성과가 다소나마 개선됐다.

그런데도 그로스가 속한 야누스헨더슨의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0일 그의 올해 투자가 크게 잘못됐다고 이례적으로 지적했다.

이런 채권왕의 고전은 현재 많은 투자자가 채권시장에서 직면한 핵심 이슈를 보여준다.

이런 이슈에는 변동성이 낮은 시기에 채권시장의 수익 창출 방법과 역사적으로 낮은 금리 수준에서의 수익 달성 방법,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양적완화 후속 조치에 따른 금리 상승 시기에서 가치 절상이 어려워진 채권에 투자하는 방법 등이 포함된다고 CNBC는 보도했다.

◇ '무제한 투자' 방식의 문제점

동시에 그로스가 취하는 '무제한 투자' 방식의 문제점도 거론된다.

그로스는 오랜 기간 무제한 투자 방식을 고집했다. 분류가 쉽지 않은 채권 영역을 모두 아우르는 투자 전략으로, 벤치마크와 단일 채권의 신용등급, 지리(geography), 채권 만기 등을 투자 기준으로 세우지 않는다.

매니저 개인의 능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으로, 수익 창출을 위해서 매니저는 어떤 형태로든 포트폴리오를 가져갈 수 있다.

기존의 투자 기준을 고려하지 않는 방식이지만, 전설적인 투자자 그로스는 고려해야 할 유일한 요소인 '성과'에서 부진을 겪고 있다고 CNBC는 꼬집었다.

매체는 "그로스와 함께한 투자자들은 채권 종목을 선택하는 것이 주식보다는 벤치마크대비 나은 성과를 보일지라도, 그것이 확실히 어려운 방법이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액티브 채권 전략에 투자할 때 적어도 매니저가 목표를 위해 가져가는 포트폴리오가 무엇인지 투자자는 이해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대체자산분배 전략에 특화된 글래스먼 웰스 서비스의 창업자 배리 글래스먼은 "그로스와 같이 어떤 채권이든 사들일 수 있는 매니저에게 자금을 맡긴다면 투자자는 여러 해의 실적 저하를 대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무제한 투자 펀드가 가지는 단점은 투자자가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르고, 포트폴리오 내에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제한 투자 방식의 채권 매니저는 전술적으로 포트폴리오를 변경할 때 하나 이상의 채권 펀드를 보유한 투자자가 포트폴리오 내 동일한 채권 거래에 대해 두 배 이상의 익스포저를 가져갈 위험이 있다. 동시에 매니저가 잘못된 베팅을 하면 해당 기간 내 손실 규모는 더욱 확대된다.

최고 실적을 내는 무제한 펀드 매니저들은 현재 주택저당증권(MBS) 시장에 대한 노출도가 크지만, 바클레이즈 채권지수의 경우 MBS에 30%가량의 노출도를 유지하고 있다.

글래스먼은 "인덱스 투자가 아니거나 투자의 주제가 구체적이지 않는다면, 채권펀드에 무엇이 있는지를 투자자가 알아야 한다"며 "투자자는 매니저의 임무를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제한 투자 방식의 매니저들은 지난 3년간의 운용 방법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고, 다시 내일을 위한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가져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무제한 투자 방식이 고전하는 것은 글로벌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시행 시기부터 시작됐다는 평가도 있다. 양적완화로 주식뿐만 아니라 채권시장의 변동성이 축소됐고, 다양한 섹터 간의 차익거래 기회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투자자문사인 클라이언트퍼스트의 미츠 골드버그 회장은 "중앙은행 정책이 변동성을 줄였고 액티브 운용의 필요성을 줄였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인정해야 한다"며 "그것이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그로스와 같은 괴물급의 매니저에겐 '최고의 날'들은 중앙은행이 우주를 구하던 시절 이전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무제한 투자 방식의 매니저들에게는 더욱 많은 변동성과 함께 채권 자산 간의 스프레드가 더욱 자주 축소되고 확대되어야 한다"고 내다봤다.

ywkwon@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