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사드(THAAD) 배치를 둘러싼 한중간의 갈등은 중국에 투자한 많은 한국기업에 소위 트라우마를 남겼다. 사드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모 대기업의 중국 주재원들은 중국에서 소속을 밝히지 못했다. 심지어 한국인임을 숨겨야 했다. 중국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동급생들로부터 왜 한국은 중국의 안보를 해치기 위한 일을 굳이 강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항의를 받았다. 사드 배치가 남긴 상처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그 후 많은 한국기업이 중국에서 철수하거나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고 있다. 물론 이를 모두 사드 탓으로 돌리기는 어려운 점이 많고, 중국기업들의 기술개발과 혁신, 한국기업 스스로의 경쟁력 저하나 세계 경기 침체,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으로 인한 중국 소비 감소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중국 제품은 무조건 싸고 품질이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화웨이 등 중국 전자제품은 CES를 비롯한 국제전시회의 주역이 되고 있으며, 삼성전자 핸드폰의 중국 내 시장 점유율은 1% 미만으로 급락했다.

우리가 스스로 IT 강국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핀테크와 인공지능, 온라인 지급결제 등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산업은 이미 중국이 한국을 상당 부분 앞지르고 있다. 우리가 중국에서는 법이 제대로 제정되지 않아 꽌시(인맥)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동안 중국법 체계는 상당히 완비된 형태를 갖춰 가고 있다. 대부분 중국기업은 이제 한국기업이 아닌 미국과 일본, 유럽의 기업들을 경쟁자로 생각하고 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回到根本)해야 한다. 사드가 남긴 교훈 중의 하나는 많은 한국기업이 각종 중국 정부 기관의 환경, 세무, 노동, 위생, 소방 안전 점검 등 조사를 받으면서 중국법을 위반해서는 더는 사업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법률검토가 잘 되어 있는 대중국 투자는 그만큼 리스크가 낮고,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이 잘 갖춰진 회사는 운영상 리스크도 낮지만, 궁극적으로 주주가 회사의 지분을 매각하고 자금 회수(엑시트)하려 할 때도 매수인과의 협상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관리된 자동차가 중고차 매매에서 유리한 것처럼 기업도 마찬가지다.

사드 사태 이후 중국에 투자하려다가 동남아로 투자지역을 바꾸는 사례들을 보았다. 전략적으로 동남아투자가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대기업의 경우 비록 동남아에서 합작투자법인을 설립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일정한 조건으로 중국 정부에 기업결합신고(경영자집중신고)를 해야 한다. 한국기업이 미국이나 유럽의 회사를 인수하는 경우에도 미국이나 유럽 회사가 중국에 자회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이들 중국 자회사에 대한 법률 실사가 필요하며, 역시 매출액 등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중국 기업결합신고 의무가 발생한다. 한국기업과 제3국 기업이 중국 밖의 지역에서 가격 담합을 하는 경우에도 중국 반독점법이 적용될 수 있다. 중국이 약 14억명의 인구를 보유하면서 세계 최대의 시장 지위를 유지하는 한 한국기업은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나 제3국에 대한 투자 시 중국법을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수년 전 댜오위다오(중국명)/센카쿠열도(일본명)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 간 영토분쟁이 발생했다. 중국 내 일본 기업들이 중국으로부터 보복을 당하고 불매운동에 시달릴 때 일본 정부 경제산업성의 엘리트 공무원을 만났다. 그는 기업이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요타를 비롯한 많은 기본에 충실한 일본 기업들은 중국 내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정책이 수시로 오락가락 변한다는 의미의 조령모개(朝令暮改)는 중국에서 나온 한자성어이기는 하지만 실제 중국 정부의 정책은 중장기 정책(가령 환경법)으로 발표하고, 수년간 일관성 있게 집행하는 경우가 많고, 공산당이 선거를 통해 바뀌지도 않기 때문에 한국과 같이 정권교체에 따라 오락가락하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거래와 반독점, 환경, 개인정보와 인터넷, 4차산업혁명 관련 법규들 등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중국의 새로운 법령들은 더욱 중장기적으로 한국기업들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 새로운 법령에 대한 업데이트가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중국에 투자를 고려하는 시점부터, 회사를 운영하는 동안, 그리고 회사 지분을 매각하거나 청산하기까지의 전 과정에 걸쳐 중국 법률의 검토와 컴플라이언스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법무법인 태평양 김성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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