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 맞서 경영권 싸움을 벌여온 사모펀드 KCGI를 비롯한 3자 주주연합이 올해 한진칼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계기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한진칼 지분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경영에 간접 개입하게 됨으로써 주총에서의 표대결이 사실상 무의미해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3자 연합을 구성하는 KCGI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반도건설이 맺은 주주 간 계약 기간이 내달 말 만료되는 상황에서 서로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3자 연합 동맹체제에 균열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조원태 회장을 상대로 했던 공세는 사실상 끝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 표대결 의미없다…주주제안 포기

1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3자 연합은 내달 열릴 한진칼 주총에서 다룰 안건을 담은 주주제안서를 한진칼 측에 발송하지 않았다.

상법상 주주제안권을 행사하려면 주총 개최 6주 전까지 주주제안을 마쳐야 한다.

올해 주총이 내달 26일께로 예상되는 만큼 늦어도 지난 12일까지는 주주제안을 마쳤어야 했다.

당초 3자 연합은 서윤석 이화여대 경영대 교수를 신규 이사로 선임하고, 정관 일부를 변경하는 수준의 주주제안을 준비해 왔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최근 연합인포맥스와 전화 통화에서 "산은이 한진칼의 주요 주주가 됐는데 대립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면서 "산은에 협조하는 의미로 주주제안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주총에서 조 회장 측과 전면적으로 대립하고, 산은의 한진칼 경영 참여에 반발해 법적 대응까지 선언했던 것에서 상당히 후퇴한 것이지만 최소한의 역할은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주총을 한 달여 앞두고 이마저도 포기한 것이다.

3자 연합이 주주제안을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시장에서는 산은을 의식한 행동으로 해석하고 있다.

산은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한진칼에 8천억원을 투입하면서 10.66%의 지분을 확보, 한진칼 주요주주에 올랐다.

3자 연합은 한진그룹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지분율은 46.7%까지 끌어모았다.

하지만 제3자 배정 방식을 통한 산은의 유상증자 참여로 3자 연합의 지분율은 41.7%로 줄어들었다.

조 회장(37.7%) 측과 산은의 지분을 합치면 약 48%로 올라 3자 연합을 6%포인트 이상 앞서게 된다.

3자 연합은 당장 경영권 판세를 뒤엎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산은에 맞서기 보다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3자 연합은 주주제안에 나서는 것 자체가 산은과 대립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계획을 아예 접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 산은의 주주제안에도 찬성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산은은 지난 10일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 이사회의 동일 성(性) 구성 금지, 이사회 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위원회 설치, 이사 보상한도 산정 투명성과 감시를 위한 보상 위원회의 설치 등의 내용을 담은 주주제안서를 한진칼 앞으로 주주 제안서를 보냈다.

산은이 한진칼 주요 주주에 오른 후 첫 주주제안을 통해 중립적인 위치에서 조 회장의 경영을 철저히 감시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다시 한 번 강조한 만큼 이를 지지한다는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다.



◇ 3자 동맹 사실상 붕괴…산은에 손 내민 강성부 vs 조현아·반도건설 각자도생

3자 연합이 주주제안 안건을 두고 끝내 합의하지 못하면서 동맹체제는 사실상 무산된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산은에 협조할 수 있다"는 강 대표의 입장 선회는 3자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독자적 입장이고, 주주제안 역시 KCGI 측이 일방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3자 연합 이름으로 끝내 발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3자 연합은 설 연휴 직전까지 주주제안을 위해 몇 차례 회동했으나 주주제안 수위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3자 연합의 내부 분열설은 지난해 말부터 끊이지 않았다.

3자 연합은 한진칼 경영권 확보라는 공동의 목표를 두고 동맹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지난해 말 법원의 한진칼 제3자배정 유상증자 가처분 신청 기각 이후 동력이 크게 상실됐고, '넥스트 플랜'을 두고 잦은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에서는 3자 연합이 올해 주총에서 어떠한 의안 제안도 하지 않으면서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종료된 것으로 보고있다.

이에 따라 3자 연합이 주총 이후 해체를 공식화하고 각자도생의 길을 도모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KCGI는 강 대표가 산은에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만큼 당장 엑시트(자금회수) 하기 보다 산은과 함께 조 회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면서 기업 가치가 높아질 때를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간 지속해서 밝혀왔던 명분을 잃은 만큼 투자자들을 설득시켜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다.

조 전 부사장, 반도건설도 당장 '넥스트 플랜'을 도모할 뾰족한 묘수가 없다.

이미 반기를 들고 조 회장 등 가족과 돌린 조 전 부사장은 상당 규모의 상속세 부담이 여전하다.

반도건설 역시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자금회수에 들어갈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3자 연합이 새로운 전략적투자자(SI)를 찾아 따로 또는 각자 경영권 분쟁을 계속 이어나갈지 말지 여부도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한진칼 주가를 고려했을 때 손해보는 투자는 아니었으므로 향후 어떤 식으로든 명분을 찾아 엑시트 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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