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근 한국은행 홈페이지에 지난해 이후 실시된 금융통화위원들의 외부강연 일부 발표 자료가 '슬그머니' 게재됐다.

한은은 2019년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금통위원들의 외부 강연 자료를 대중에 공개했지만, 지난해부터는 게시를 중단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1년여 치의 강연 자료를 공개했다. 한은 직원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일 만큼 소리소문없이 진행됐다.

지난해 초 신인석 전 금통위원을 시작으로 서영경 위원 4차례, 고승범 위원 3차례 등 총 8건의 강연 관련 자료가 공개됐다. 이 기간 임지원, 조윤제, 주상영, 이승헌(한은 부총재) 등 다른 위원의 외부 강연 내역은 없다. 한은 설명에 따르면 해당 8건뿐만 아니라 강연 자료를 공개할 수 없는 다른 행사도 일부 있었다고 한다.

한은 총재를 포함한 7명의 금통위원이 결정하는 기준금리가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가공할 수준'이라는 것은 최근의 부동산값 폭등 등으로 전 국민이 여실히 체감하고 있다. 금통위원 한 명 한 명의 말 한마디가 가지는 무게도 그만큼 무겁다.

하지만 한은의 금통위원 메시지의 관리는 여전히 비밀주의와 주먹구구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이번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금통위원이 대외적으로 활동을 해도 어떤 행사에 참여했고, 어떤 말을 했는지 한은이 공개하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어느 기준으로 금통위원의 외부 행사의 공개 및 비공개 여부가 결정되는지, 지난해는 왜 발표 자료의 게시가 중단된 것인지, 최근에는 어떤 이유로 다시 공개된 것인지를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이유나 원칙도 찾기 어렵다.

한은은 각 위원의 의견을 총재가 종합해 대중에 공개하는 것을 통화정책 소통의 대원칙으로 삼고 있다. 위원 개인의 의견이 수시로 공개되는 것이 오히려 혼선을 키울 수 있다는 인식도 적지 않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익명으로 공개되는(소수의견 시만 실명 공개) 금통위 의사록 외에 개별 위원의 목소리를 대중이 들을 수 있는 창구가 없다. 소통 확대 필요성으로 지난해까지는 금통위원의 출입기자단 정례 간담회가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중단됐고, 금통위는 코로나19가 진정돼도 이를 재개하지는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다르다. 금리 결정 권한을 가진 연준 임원진 및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외부 강연과 언론 인터뷰 등으로 수시로 견해를 밝힌다. 연준의 '젊은 피'에 해당하는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연은 총재는 SNS로 일반 대중과 직접 문답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한다.

금융시장 참가자 등 경제 주체의 생각과 행동을 중앙은행이 목표로 하는 통화정책의 방향으로 이끄는 데 어느 소통 방식이 더 적합한지는 의견이 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통화정책이 성공적이기 위한 또 다른 핵심 가치인 독립성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연준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투명성 확대를 위한 연준의 노력은 한은과는 비교할 수 없다.

연준 의장과 임원, 지역 연은 총재 등의 대외 행사는 언론에 공개되고, 발언 원고도 '풀 워딩'으로 제공된다.

이들은 매달 혹은 분기의 일정표도 공개한다. 이 일정표에는 시간 단위로 누구와 회의를 했고, 어떤 외부 인사를 만났는지 등이 세세하게 담긴다. 제롬 파월 의장의 일정표를 보면 대통령이나 재무장관, 국회의원과의 회동 등이 모두 나와 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등 민간 인사와의 만남도 공개된다.

심지어 연준은 이사진의 내부 회의를 화상으로 중계하거나, 일반인이 참관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연준이 이토록 투명성에 집착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투명성이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직결되는 탓이다.

정책 결정권자들의 평소 생각과 발언, 세부적인 대외 활동 내역 등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공개되는 상황에서 정책 결정에 '보이지 않는 힘'이 끼어들기 어려울 것이란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노골적인 압박에도 연준의 독립성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지 않은 이유는, 대통령과 논의 내용까지도 가감 없이 공개하는 정공법에 있었다고 본다.

한은 구성원들은 금통위의 금리 결정에 번번이 제기되는 '외압설'을 극도로 못마땅해한다. 최근 금통위의 결정은 매우 독립적이지만, 외부의 오해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외부 시선 탓만 하기보다는 한은이 독립성을 각인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금통위가 앞으로는 대중과의 접점을 늘릴 예정이라고 한다. 위원의 대외 강연 등을 사전에 공지하고, 미디어에 공개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이전의 정례 간담회와는 다른 방식의 출입기자단과 소통 방식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침묵을 깨고 금통위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를 기회로 금통위의 투명성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기준도 세워지기를 기대한다.(금융시장부 오진우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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