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흥국생명이 이르면 내년 5억 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상환한다. 차환 발행 여건을 장담할 순 없지만, 내년부터 적용되는 규제 제도 아래 유동성 상황이 다소 나아지는 만큼 해를 넘기지 않고 콜옵션을 행사할 방침이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내년 5월 도래하는 신종자본증권 이자 지급 기준일에 맞춰 콜옵션 행사를 검토할 예정이다.

흥국생명 고위 관계자는 "이르면 내년 5월, 늦어도 연말까지는 차환 발행을 통한 조기 상환에 나설 것"이라며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최근 한두 달 새 갑작스러운 금리 상황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내린 결정인 만큼 한국물에 미칠 영향이 최소화하도록 조기 진압할 것"이라고 말했다.

흥국생명이 지난 2017년 11월 재무 건전성을 선제로 보강하고자 발행한 5억 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에는 5년 뒤 콜옵션 상환 조건이 포함됐다. 이달 9일은 해당 콜옵션의 만기일이었다.

콜옵션 이행 여부는 계약자 간 기존 채권에 부여된 권리인만큼 이행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은 없다.

하지만 발행 시장에서 콜옵션 이행은 통상 시장과의 신뢰를 담보한 도의적인 책임으로 여겨져 왔다. 듀레이션이 긴 자본증권을 사들이는 투자자 대다수는 콜옵션 만기를 현실적인 만기로 생각하고 매입해서다. 만약 콜옵션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투자자의 기회비용을 날리는 셈이라 대외적인 신인도에 큰 타격을 입는다.

보험업 감독 규정상 대체조달 요건에 따라 신종자본증권은 상환 후 지급여력비율(RBC)이 150% 이상인 경우에 한 해 조기 상환이 가능하다.

흥국생명의 지난 6월 말 기준 RBC는 157.8%다. 금리 상황을 고려하면 최근 RBC는 금융당국 권고치(150%)를 하회했을 가능성이 크다. 차환 발행이나 유상증자 없이는 콜옵션 조기 상환이 불가능했다.

금융당국은 채권 시장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고자 사전 협의를 통해 흥국생명의 조기 상환을 이례적으로 승인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이를 포기했다. 최근 싱가포르를 찾아 기업설명회(IR)를 열어 차환 발행을 위한 투자자 모집을 했지만 10%대 금리를 제안해도 투자자를 찾기가 녹록지 않아서다.

결국 시장 수요 부족으로 차환 발행에 실패한 흥국생명은 콜옵션 행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

자본증권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은 것은 국내에서 13년 만의 일이었다. 우리은행은 2009년 후순위채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아 신인도를 정상화하는 데 오랜 시간 애를 먹었다. 당시 신용평가사들도 우리은행의 콜옵션 미행사가 국내 은행의 차입 여건을 악화한다며 혹평을 쏟아냈다.

과거 학습효과에도 이를 대비하지 않은 흥국생명을 향한 시장의 비판은 여전하다.

올해 2017년 발행한 6천억 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과 150억 원 규모의 후순위채 콜옵션 행사 기간이 도래함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던 만큼 사전에 대비가 필요했다는 게 시장 참가자들 사이 중론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주주인 태광산업[003240]의 유상증자 등 자본 수혈을 기대하기 어려운 흥국생명은 차환 발행으로만 상환이 가능했다. 해결책을 시장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다만 시장에선 흥국생명 콜옵션 재행사 시점이 6개월마다 돌아오는 데 안도하고 있다. 과거 우리은행의 경우 콜옵션 재행사 시점이 5년으로 설정돼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더 컸지만, 흥국생명은 주기가 짧아 상대적으로 투심을 진정하는 데 수월할 수 있다는 논리다.

흥국생명은 발행 당시 콜옵션과 함께 부여된 스텝업 조항에 따라 투자자들에게 향후 6개월간 기존 금리(4.475%)에 콜옵션 만기일 이후 이자율결정기준일의 미 국채 5년물에 2.472%P(포인트)의 금리를 더해 이자율을 올려 지급하기로 했다.

이자 지급일은 내년 5월이다. 해당 시점에 흥국생명은 다시 콜옵션 행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연초 이후 시장 상황을 살펴 발행 시장에 재도전할 예정이다.

김선영 한국신용평가 선임 애널리스트는 "흥국생명의 경우 내년 도입되는 IFRS17과 킥스 체제에서 금리 상승으로 인한 자본 비율 하락 부담은 줄어든다. 경과조치 활용 등을 고려하면 자본 비율 대응으로 인한 규제 부담은 크지 않은 상황"이라며 "다만 이번 콜옵션 미행사로 인해 자본시장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는 만큼 향후 자본력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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