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한국투자증권과 옛 메리츠증권이 지금의 시장을 만들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최근 발행어음 시장을 이렇게 평가한다. 과거 종금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던 메리츠증권이 키운 발행어음 시장에 종합금융투자사업자들이 새롭게 뛰어들면서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손쉽게 단기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됐다.

하지만 꼬리표 없는 돈이 어디로 흘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금융당국이 특별계정을 통해 관리하도록 했지만, 유동성 위기가 고조되는 증권가에서 투자자 보호 장치조차 없는 발행어음은 또 다른 어음 사태로 이어지는 취약 고리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24일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증권금융은 3조 원 규모로 마련한 중소형 증권사 지원 프로그램 대상을 대형 증권사까지 확대했다. 이로써 발행어음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도 단기 유동성 마련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연합인포맥스가 이날 단독 송고한 '증권사 구원투수' 증권금융, 대형 증권사도 유동성 공급…오늘 5천억 긴급투입' 제하의 기사 참고)
◇"발행어음이 CP 조달 금리 높였다"…금융당국 경계령
금융당국이 대형 증권사의 유동성 공급에 나선 것은 최근 단기자금 시장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대형 증권사들이 고금리로 발행어음을 판매하며 CP 시장의 금리 추이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발행어음 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한 상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종투사 주도의 발행어음 금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경각심을 가지고 해당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시장의 조달 금리가 높아지는 측면이 확실히 있다. 투자자 보호와도 연결해서 봐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6년, 금융당국이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 발행어음 업무를 허용한 것은 기업금융을 위한 재원을 조달해 이들의 대형화와 사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당시에도 1년 미만의 만기를 가진 발행어음의 특성 탓에 유동성 공급과 만기 불일치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컸다.

이에 금융당국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이 기업금융에 우선 사용되도록 유도하고, 만기 1년이라는 특성을 고려해 기업금융 의무 비율을 최소 50% 이상으로 가져가도록 경과 규정을 마련해 지도했다.

특히 증권사의 건전성 관리를 위해 자기자본의 200%까지 발행할 수 있도록 총량규제를 설정하고 '유동자산/유동부채' 비율이 100% 이상을 유지하도록 해 건전성을 관리하도록 했다.

무엇보다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의 충분한 손실흡수 능력을 갖춘 금융투자업자에게만 발행어음 업무를 제한적으로 허용한 것도 발행어음 조달 자금의 특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2017년 11월, 한국투자증권이 발행어음 라이선스를 처음으로 획득하면서 종합금융투자사간 경쟁은 치열해졌다. 이듬해 5월 NH투자증권, 그로부터 1년 뒤 KB증권이 발행어음 인가를 획득하면서 발행어음은 증권사들의 새로운 먹을거리로 자리 잡았다.

이들 증권사는 신기술조합, 사모펀드(PEF), 중소벤처 등 모험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비중은 여전히 미미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최소한의 규제 비율 이외의 자금은 PF, 기업공개(IPO) 등 더 큰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는 시장으로 흘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예금자 보호 안 되는 발행어음…유권해석상 투자 상품에도 해당 안 돼
지난 2월 금융당국은 발행어음을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발표했다. 발행어음이 금융투자상품이 가지는 원본 손실 가능성이 없어서다.

실제로 발행어음은 발행인의 동의 없이 양도가 불가능해 유통 과정상 가치변화 가능성이 없고, 만기를 보유하면 원본과 이자가 보장되는 상품이다. 시장 위험과 상품 구조상 위험이 없다는 뜻이다.

원본 손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발행인의 파산 등에 따른 신용위험뿐이다. 이는 법령에서 명시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증권사가 망하지 않는 한 발행어음으로 손실을 볼 가능성은 없는 셈이다.

금융당국이 이와 같은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기관 투자자들은 발행 어음 투자가 가능해졌다. 증권사들은 큰 손 고객을 맞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해당 유권해석 이후 일부 종투사가 공격적으로 발행어음을 발행하기도 했다"며 "기관투자자의 자금 운용 범위를 확대한 계기가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발행 절차가 간편한 발행어음은 여러 투자자로부터 상시적인 자금수탁이 가능하다. 주가연계증권(ELS)이나 환매조건부채권(RP)과 같은 헤지 자산, 담보 관리 부담이 없어 증권사 입장에선 운용은 자율성은 물론 효율성까지 기대할 수 있다.

특히 발행 공시나 신용평가와 같은 공모 규제도 적용받지 않아, CMA 계좌와 결합하면 자금 조달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증권사의 유동성 우려가 커진 상황에선 단기자금 시장의 취약 고리가 될 수밖에 없다.

과거 종합금융회사(이하 종금)가 발행하던 발행어음과 달리 예금보험공사에 의한 예금자 보호도 되지 않는다. 기관 투자자들의 발행 어음 투자 규모 역시 갈수록 더 늘어나는 추세다.

한 증권사 고위 임원은 "증권사의 파산을 감히 누가 예상하나. 은행이 아닌 이상 지금은 어느 금융회사도 안전하지 않다. 영업이 되더라도 하루만 돈이 돌지 않으면 어느 증권사든지 휘청일 수 있다"며 "종투사의 발행어음에 대한 규제의 빈틈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금융당국이 발행어음 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한 것 역시 이런 위험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4조 원 이상의 자본 허들을 둔 것의 가장 큰 목표는 소비자 보호"라며 "발행어음 시장과 함께 단기자금 시장 추이를 지속해서 살펴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업계 먹구름 (PG)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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