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노현우 한종화 기자 = 기업어음(CP) 시장에서 이상 거래가 만연하면서 불안이 계속되자 레고랜드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CP 시장 자체의 잘못된 관행과 시가평가를 받지 않는 CP 시장의 제도적인 허점이 무분별한 수익 추구 경향을 만들었다는 문제 제기가 나온다.

2일 채권시장과 인포맥스 'CP·전단채 통합 유통정보'(화면번호 4740)에 따르면 지난 30일 기준금리(3.25%)보다 낮게 거래된 CP·전단채 거래는 9조3천억 원에 달했다. 하루 전체 거래 규모 21조4천여억원의 40%를 웃도는 수준이다.

채권시장에서는 이런 거래의 상당 부분이 정상적이지 않은 거래라고 추정한다.

사정을 잘 아는 시장참가자들은 두 가지 제도적인 문제점이 현재와 같은 상황을 유발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시가평가를 받지 않는 CP 거래와 CP 운용 계정의 만기 불일치 문제다.

현재 증권사 간 CP 거래는 시가평가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 말은 민간평가사가 CP의 가격을 정하지 않고 당사자가 거래하는 가격이 곧 그 CP의 가격이 된다는 얘기다.

기준금리보다 낮은 가격에 당사자끼리 거래하면 채권을 파는 곳이 시장 상황에 비춰서 말도 안 되는 이익을 얻고, 사는 쪽은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손해를 본 쪽에는 다음 거래에서 유사한 방식으로 수익을 안겨주면서 서로 벌충하는 것이 현재 암암리 시장의 관행으로 전해진다.

다른 이슈는 단기 신탁 상품으로 기관 자금을 받은 증권사 등 운용 기관에서 장기 CP를 사서 운용하는 만기 불일치의 문제다. 증권사들은 기관의 자금 유치를 놓고 경쟁하기 때문에 서로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하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기 CP만을 사서 운용해서는 추가 수익을 돌려줄 수 없기 때문에 장기 CP와 크레디트 채권을 사서 수익을 내게 된 것이다.

만기가 긴 채권은 만기가 짧은 채권보다 상대적으로 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의 변화가 더 크다. 이런 특성 때문에 기준금리 인하기였던 최근 몇 년간 신탁 계정의 운용은 증권사에 큰 수익을 가져다줬고 고객에게도 시장보다 높은 수익률을 돌려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작년부터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자 문제가 발생했다.

금리가 변할 때 가격이 더 크게 변하는 장기물 채권의 특성은 독이 돼 돌아왔다. 한은 기준금리 인상의 속도와 폭이 예상을 뛰어넘어 손실이 급격하게 불어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알음알음으로 금리를 낮춰서 거래하는 일이 만연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증권사의 한 채권 운용역은 "기준금리가 인하될 동안 고객 자금으로 CP를 운용하는 상품이 증권사에 큰 수익을 안겨줬고 관련 사업도 확장됐다"며 "CP 운용은 원래 수익을 보장하는 상품이 아니지만 사실상 보장하는 것처럼 돼버렸고, 금리 인상기에 오자 이런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CP 시장의 한 관계자는 "증권사 신탁이나 랩은 고정금리를 원하는 사람(고객)이 많아 고정금리 CP로 맞춘다"며 "금리가 낮은 시기에는 수익을 더 받으려고 만기를 길게 하고 분기마다 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수익자도 알고, 증권사 신탁이나 랩 하우스에서도 알고 있다"며 "은행 신탁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사실상 고정해둔 그 금리에 줄 수 없기 때문에 더 큰 문제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의도 증권가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j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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