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국민연금이 구현모 KT 대표의 연임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으면서 KT를 겨냥한 주주활동을 강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구현모 KT 대표를 압박하기 위해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까지 상향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경영참여는 '단순투자'나 '일반투자'와 달리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의 선임이나 해임을 요구할 수 있는 단계다. 국민연금이 KT를 경영참여 대상으로 조정하면 한진칼 이후 처음이다.

◇경영참여로 압박 강도 높이나

KT 이사회가 차기 최고경영자(CEO) 후보로 구현모 대표를 추대한 이상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 표 대결은 불가피해 보인다. 현재 기류라면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은 앞서 작년 3월 정기 주총에서도 박종욱 KT 각자 대표이사를 사내이사에 재선임하는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한 바 있다.

당시 국민연금은 박 대표가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혐의로 약식 기소된 후 벌금형을 선고받은 점을 문제 삼아 그의 재선임을 반대했다. 문제는 구 대표도 같은 혐의로 총 1천50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이 부분 또한 결격 사유로 보고 있어 이번 주총에서도 그의 재선임을 반대할 것으로 여겨진다.

만약 구 대표가 주총을 통과한다면 국민연금은 주주활동의 강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상황에 따라선 주주제안으로 구 대표의 해임 안건이 오를 가능성도 점쳐진다.

2019년 도입된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중점관리 사안'이나 '예상하지 못한 우려사안'이 발생했음에도 개선 여지가 없는 기업은 적극적 주주활동 대상이 된다. 이 가운데 횡령, 배임, 부당지원, 사익편취 등 법령상 위반 우려로 기업가치를 훼손했거나 주주권익 침해가 발생한 사안은 중점관리 사안에 포함되는데 구 대표의 경우 여기에 해당한다.

국민연금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구 대표의 해임을 주주제안으로 공식화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연금은 KT의 지분 보유 목적을 현행 '일반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바꿔야 한다. 기업 임원의 해임에 나서려면 자본시장법에 따라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변경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KT의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꾸면 그 자체로 시장에 파장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이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공식 도입한 이래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둔 것은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던 한진칼이 유일했다.

경영권 분쟁이 일었던 당시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에 처음으로 공개서한을 발송하며 공개주주활동에 나서는 한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대해 해임을 건의할 것이라고 선언하는 등 공격적으로 움직였다.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변경하는 것은 사실상 주주활동 측면에서 기업과 전면전을 펼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과도한 주주활동' 반발 뒤따를 듯

하지만 국민연금이 KT를 겨냥해 경영참여로 돌아서거나 해임을 제안한다면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적 개선과 주가 부양에 성공했고 KT 이사회에서도 적격 후보 판정을 받은 구 대표를 겨냥해 이같은 주주활동은 과도하다는 비판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국민연금은 장기 수익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주주권을 행사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구 대표는 재임 기간 KT 주가가 90% 급등했고 영업이익도 40% 가까이 개선됐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의 명분이 부족하다. 벌금을 처분을 받긴 했지만, 비슷한 수준의 당국 징계를 받고도 자리를 지키면서 국민연금으로부터 공개 저격을 받지 않는 기업인은 주요 기업 중에도 많아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국민연금이 경영참여를 결정하기 전에 특정 기업의 임원에 대해 사실상 해임을 요구한 점도 절차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KT가 구 대표를 CEO 후보로 낙점한 뒤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서 본부장이 KT에 구 대표의 퇴임을 공식 요구한 것인데 KT에 대해 경영참여로 투자 목적을 바꾸지 않은 상태에선 적절하지 않은 모양새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분율과 관련한 수익 측면의 문제 때문에 국민연금이 경영참여를 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국민연금은 KT의 최대 주주로 지분율이 10.74%에 달해 자본시장법의 '10%룰'이 적용된다. 이 조항에 따라 국민연금은 경영참여를 선언할 경우 이로부터 6개월 이내에 매매에 따른 단기차익을 해당 법인에 반환해야 한다. 달리 말해 국민연금이 경영참여를 선언해 구 대표의 해임을 건의하려면 그간 벌어들였던 주식 매매 차익 중 상당분을 KT에 돌려줘야 한다는 뜻이다. 주주가치를 제고한다는 명분이지만 결과적으로 기금 운용 수익률엔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은 과거 한진칼 경영권 분쟁 때도 한진칼에는 경영참여를 했으나 대한항공에는 하지 못한 전례가 있다. 당시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한진칼이 7.34%, 대한항공은 11.56%로 적극적 주주활동과 운용 수익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국민연금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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