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종화 기자 = 한국은행의 긴축 통화정책 기조가 시장의 의구심에 직면했다.

한은은 공식적으로 '피벗'(통화정책 전환)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다른 한편 단기자금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해 시중금리 하락에 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어 엇박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긴축 전망이 흔들리자 1월 기대인플레이션은 3개월만에 반등하면서 경각심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의 통화정책 관련 발언까지 잇달아 나오면서 한은이 압박을 받는 모양새다.

◇ 남아도는 유동성…'긴축' 한국은행, 한편으로는 유동성 공급

2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일 시행한 7일물 환매조건부채권(RP) 매각에서 낙찰 금액 25조 원에 응찰액은 그 두 배가 넘는 62조9천600억 원이 몰렸다.

RP 매각은 한은이 채권 담보를 제공하는 대신 시중의 자금을 빌려오는 형식을 취해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하는 공개시장운영이다. 응찰액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시중에 자금이 남는다는 얘기다.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사실은 RP 매각과 반대 방향인 한은 RP 매입의 인기가 예전같지 않다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RP 매각과 달리 한은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RP 매입은 지난 25일 1조 원의 예정 금액에 응찰액은 절반인 5천억 원에 그쳤다.

RP 매입의 규모와 응찰액이 줄어든 이유는 한은이 이미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했기 때문인 측면이 크다.

한은은 작년 10월 단기자금시장의 유동성 경색에 대응해 올해 1월 31일까지 6조 원의 RP 매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고, 연말이 되기 전 이미 그보다 더 많은 유동성을 풀었다.

한은은 12월 30일 혹시 모를 자금 부족 사태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3일물 RP 매입으로 한 번에 8조4천억 원을 공급하기도 했다.

막대한 유동성을 풀었지만 한은은 RP 매입은 어디까지나 단기자금시장의 경색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로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통화정책과는 결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월 기자간담회에서 "금리정책은 전체 우리나라 경제에, 유효수요에 미치는 정책"이라며 "(한은이 부동산에 대응하는 경우) 금융안정을 위한 다른 수단들이 있다. 지난 연말에 시장안정 조치를 한 것처럼 유동성을 타겟해서 공급한다든지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풍부한 자금 공급이 계속되다 보니 의도와는 달리 시중 금리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공급된 자금에 꼬리표가 달려서 단기자금시장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채권시장에서는 거의 대부분 만기의 국고채와 통화안정증권 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낮은 상황에 처해있다. 특히 장기적으로 기준금리 인하 전망이 없는 단기 구간에서도 기준금리와의 역전이 유지되는 이유는 오로지 유동성의 힘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증권사의 한 채권 운용역은 "현재 단기물이 강한 이유는 자금이 많다는 이유 하나"라며 "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풍부한 유동성은 국고채 금리의 하락-은행채 및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하락-은행 대출 금리의 하락으로 연결돼 사실상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효과를 반감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국고채 수익률 곡선(파랑)과 기준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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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부동산 살리기였나…다시 올라버린 기대인플레이션

26일 나온 '1월 소비자동향조사' 자료에는 한은과 시장의 경각심을 일깨울만한 경제 지표가 담겨있다.

당국의 긴축 의지가 의구심을 받는 상황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이 3달 만에 반등한 것이다.

향후 1년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인 기대인플레이션은 지난 11월과 12월 연속으로 하락했다가 1월 다시 0.1%포인트 올라 3.9%를 나타냈다. 같은 조사에서 주택가격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도 62에서 68로 6포인트 상승했다.

정부는 정부대로 '언중유골'의 발언을 내놓아 한은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3일 YTN에 출연해 "지금 경제가 어려워서 대출을 쓰는 서민들이 이자 상환 부담에 굉장히 힘들어 한다"며 "결국은 중앙은행에서 금리 정책하면서 그런 부분을 고려해 정책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추 부총리는 26일에도 "한은법에는 물가안정을 목표로 하고 있고, 금융안정에도 유의해야 하며, 물가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정부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조항까지 다 있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의 발언은 정부와 한은의 공조 필요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에 공조 정책의 목표는 결국 부동산 시장이 아니겠냐는 해석이 제기된다.

채권시장의 한 관계자는 "둔촌주공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을 위해서 정부가 상당한 규제 완화를 했는데 계약률이 7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며 "정부 입장에서는 부동산이 거시 경제의 문제가 될 수 있겠다는 정책 판단을 할 수 있고, 여기에 한은이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서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은의 유동성 공급이 인플레이션 억제 목표와는 모순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현재 경제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정부와 한은의 정책 공조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한은의 가장 큰 목표가 물가안정인데 작년 한은이 환율 급등에 대응할 때는 물가안정 목표와 엇박자가 없었다"며 "부동산 연착륙이 또 다른 정책 목표가 되면서 엇박자인 부분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부동산이 무너지면 소비를 포함해 내수 경기가 상당히 악화할 수 있어 정당화될 수 있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j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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