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기자 = 우리나라 외환시장이 건국 이후 최대 변혁을 앞뒀다.

그동안 꼭꼭 걸어 잠갔던 시장의 빗장이 내년 하반기부터 유수의 해외금융기관에 개방되고, 거래시간도 거의 24시간 체제로 탈바꿈한다.

닫힌 시장에 익숙했던 대부분의 국내은행에는 경험하지 못한 도전이 될 수 있다.

그런 만큼 그동안 선진화 도입 과정을 두고는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당국이 너무 빠른 속도로 시장의 문을 열려고 한다는 걱정도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지난해 외환시장이 급변동하며 선진화 방안의 발표가 미뤄졌을 때는, 정부가 과연 이를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7일 선진화 방안을 공식 발표하면서 내년 7월 시행을 사실상의 데드라인으로 못 박았다.

시쳇말로 '열차는 출발'했다. 이제 어느 은행이 달러-원 시장의 주도적인 플레이어로 성장할지 무한 경쟁의 장이 열렸다.

특히 국내은행은 글로벌 본점의 막강한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외국계 은행 지점과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미 시작된 게임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철저한 준비밖에 없으며, 준비는 결국 투자다.

민완 딜러를 키워내는 인적 투자와 전자거래의 핵심인 MMS(마켓메이킹시스템) 등 시스템 고도화, 글로벌 규제 체계에 발맞출 수 있는 제도적인 정비가 핵심이다.

우려스럽게도 시중은행들의 준비는 아직 미흡한 것 같다.

당장 올해 연초 인사이동 등에서 외환 딜링룸의 인원을 대폭 충원한 은행은 찾아보기 힘들다. 내년 7월 거래시간 확대를 앞두고, 런던 등 해외 지점에 트레이딩 데스크를 설치하든 국내에서 야간 데스크를 운용하든 인력의 확대는 필수적이다.

시중은행의 경우 외환 트레이딩을 경험해 본 인력이 적지 않다지만, 역외 큰손들과 맞서 거래하며 시장을 이끌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딜러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랜 실전 경험을 통해 길러진 '정예 요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제적으로 인력을 보충해 실전 훈련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외환 전자거래시대를 대비한 시스템의 정비도 마찬가지다. 어그리게이터의 도입 등 전자거래가 본격화하면 누가 더 좋은 호가를 빠르게 제시하느냐가 우열을 가를 수밖에 없으며, MMS의 고도화가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시중은행 중에는 API 거래를 시작한 곳은 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 두 곳뿐이다. 나머지는 아직 개발 단계에 있다. 오랜 기간 시스템을 갈고 닦아 온 글로벌 은행에 대응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도입하고, 실사용을 통해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

해외기관들과 파생상품 거래를 원활히 하기 위한 해외청산소 가입 및 각종 증거금 관련 계약 등 라인 확보 노력도 늦출 수 없다.

이런 투자는 결국 금융사 최고경영진의 의지와 결단이 필요한 문제다.

지난해 KB금융그룹이 4조4천억 원 이상 사상 최대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는 등 국내 은행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달성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금리 시대 예대마진 장사로 배를 불렸다는 따가운 시선도 적지 않지만, 미래 먹거리를 위해 투자할 여력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그동안 시중은행에서 외환은 주력 분야로 보기 어려웠다. 본격적인 원화의 선진화에 이어 국제화 흐름으로 나아가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원화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시장이 형성된다면 미래의 먹거리가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시장이 열린다면 결과는 명약관화다. 새로운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차원이 아니라 변방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선진화 시행까지 남은 1년여의 기간 동안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 당국의 조력도 필수적이다. 지금까지의 선진화 도입 논의는 정부 주도로 이뤄진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도입 방침이 확정된 만큼 세부적으로 어느 부분을 보완하고 지원해야 할지 시장과 당국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부의 눈치를 보며 필요한 부분도 문제 제기를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있어선 곤란하다.

딜링룸 전경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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