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을 두고 국내 보험사와 카드사들의 긴장도 커지고 있다. 금리 인상과 맞물려 급증한 자본 비용의 리스크는 은행뿐만 아닌 모든 금융사의 자본 정책의 핵심에 맞닿아 있어서다.

무엇보다 완화하는 듯했던 정책 은행의 고강도 긴축 기조가 유지되는 한 단기 자금시장과 단기물 중심의 채권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일각에선 레고랜드 사태와 같은 제2의 유동성 위기까지 우려하는 모양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보험사와 카드사들은 지난 주말 발생한 SVB 파산과 관련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해졌다.

한 보험사 재무담당 임원은 "미국 중소형 은행의 파산이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이 절대적"이라며 "이번 사건이 시장에 미칠 영향과 파급력, 시나리오별 상황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 중"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SVB 파산 소식과 함께 지난주 후반 한 자릿수 대 움직임을 보이던 VIX 지수는 현재 25포인트까지 상승했다. 이는 지난해 8월 이후 가장 높은 일간 상승 폭이다.

◇ 일 년 새 980% 급등한 이자 비용…고금리 경쟁까지 보험사와 닮았다

금융권에선 SVB 사태의 발단으로 급증한 이자 비용을 손꼽는다.

지난해 SVB 은행의 이자 비용은 직전년도 대비 980%나 급증했다. 물론 금리 상승기 이자 비용 증가는 모든 금융회사가 겪는 일이다. 이 기간 모간스탠리조차 700% 넘게 이자 비용이 늘었다. BOA, 골드만삭스, 씨티은행, 웰스파고는 200~300% 안팎으로 이자 비용이 증가했다.

상대적으로 SVB의 이자 비용 증가 폭이 컸던 것은 핀테크 업체 등을 대상으로 고금리 예금을 유치한 탓이다. 사업구조가 단순했던 SVB가 시장에서 유동성을 확보할 길은 많지 않았다. 결국 SVB는 비싼 돈을 주고 시장에서 유동성을 확보했다.

확보된 유동성은 절반 이상이 장기 국채에 투자됐다. 하지만 연일 백스텝(기준금리 50bp 인상)을 시사하는 파월 의장의 매파적 발언으로 채권 시장 금리가 급등하자 채권 가치는 급락했다.

결국 SVB 금융그룹이 대규모 자금 조달 계획을 발표하면서 뱅크런이 맞물렸다. SVB는 채권 등 21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매각했고, 이 과정에서 18억 달러 손실이 발생했다. 부족분을 메우고자 긴급 자금 지원 조달 계획이 발표됐지만, 파산이 결정되며 주가와 채권 가격은 곤두박질쳤다.

시장에선 이를 두고 국내 보험사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지난해 일부 보험사들은 채권 투자 계정을 조정하며 조(兆) 단위 손실을 보기도 했다. 유동성 위기를 헤쳐 나가고자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 등 자본 증권을 발행, 높은 금융 비용을 감내했다. 그리고 연말에는 고금리 저축성 보험을 연달아 출시하며 유동성 확보 경쟁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은 자본증권 발행을 통한 건전성 확보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대주주가 참여하는 '증자'가 아닌 이상, 채권 발행은 결국 투자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빚이기 때문이다.

과열된 고금리 저축성 상품 판매를 두고도 연일 경고장을 보냈다. 역마진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상품 경쟁이 업권의 건전성을 저하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또 다른 보험사 임원은 "이번 사태의 핵심은 유동성 확보를 위한 출혈 경쟁"이라며 "보험사들이 찍어낸 자본 증권의 이자 비용이 해마다 늘고, 예전부터 판매해온 저축성 보험의 역마진이 쌓이고 있다. SVB 사태에서 일부 보험사들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 유동성 경색 나올까…조달시장 불안감 확산

미국 금융당국의 발 빠른 조치로 시장에선 SVB 사태가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은행 전반에 걸친 문제가 아니라 SVB가 보유한 특수한 사업 구조 탓에 투자 자산의 쏠림현상이 긴축 기조와 만나 발생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 불안에서 촉발되는 유동성 경색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관련 업종은 물론 단기물 중심의 스프레드 확대와 조달 비용 증가, 부도율과 연체율 증가 등 시장의 피로가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가뜩이나 올해 조달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카드사들의 부담은 더 크다. 미국을 중심으로 고강도 긴축 스탠스가 유지되는 한 단기적인 관점에선 유동성 리스크가 유발되는 게 일반적이다. 지난 2019년 미국의 레포 시장, 그리고 지난해 국내 레고랜드 사태가 대표적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단기물 중심의 채권시장에서 금리 급등은 예상치 못한 자금 쏠림을 유발한다"며 "연초 이후 언더 발행이 이어지고 있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조달 시장의 불안감은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험사의 경우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주식·채권) 비중이 큰 금융회사의 경우 앞으로 긴축 기조가 지속되는 한 채권 가치가 급락하면서 리스크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미국 은행 중 AFS 비중이 큰 은행들을 제2의 SVB로 보고 있긴 하지만 이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시장에 준 시그널이 확실히 있다. 현재로선 국내 금융사들도 AFS 조정을 섣불리 할 수 없어 고민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이자율 스와프 시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보험사 자산운용 담당 임원은 "채권 투자로 인한 미실현손실에 대해 방어가 전혀 되지 않았다. 헤지 개념이 부족했던 것"이라며 "이자율 스와프 등을 충분히 진행함으로써 금리 인상 리스크를 분산해야 한다는 경각심이 시장에 더 커진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굳게 닫힌 실리콘밸리 은행 본사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태종 특파원 =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정문이 굳게 닫혀 있다. 2023.3.12 taejong75@yna.co.kr

 

 


jsje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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