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금리로 퇴직연금 3조 줄여 사업의존도↓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지난해 비정상적으로 치솟은 금리 탓에 채권 매각 대신 환매조건부채권(RP)을 선택했던 롯데손해보험의 판단은 적확했다.

보험사에 만연했던 고금리 경쟁에서 한발 벗어나 역마진을 최소화해 수익성을 방어했고, 퇴직연금 의존도를 줄여 신용등급과 자본건전성 전망도 끌어올렸다.

◇고금리 경쟁 벗어난 롯데손보, 퇴직연금 3조 물량조절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롯데손보의 퇴직연금 적립액은 6조1천903억 원으로 직전년도(9조6천27억 원) 대비 3조원 넘게 줄었다.

롯데손보는 지난해 12월 퇴직연금 원리금보장형(DB) 상품(1년 만기)의 적용 금리로 5.11%를 제시했다. 당시 전 금융권의 퇴직연금 평균 금리가 6%대였음을 고려하면 1%포인트(P)가량 낮은 금리였다.

실제로 같은 기간 생명보험사 중에서는 푸본현대생명이 6.60%의 금리를 제시해 고객 확보에 열을 올렸고, 손해보험사로는 KB손해보험(5.90%)이 눈길을 끌었다. 롯데손보의 금리는 부산은행·경남은행(5.10%)과 비슷했다. 현대차증권(6.65%), 키움증권(8.25%), 메리츠증권(6.90%) 등의 금리는 더 높았다.

이처럼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금융사들은 퇴직연금 사업자와 비사업자를 가리지 않고 자금 확보에 열을 올렸다. 그 탓에 가장 비중이 큰 1년 만기 DB형(원리금보장)의 금리가 급격하게 치솟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실상 1년 만기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은 예금과 같은 성격으로 금융사가 고객에게 돈을 빌리는 개념"이라며 "금리 수준에 따라 자금이 움직이다 보니 유동성이 급해진 일부 금융사를 시작으로 퇴직연금 확보 경쟁이 비이성적으로 펼쳐졌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시장에선 업계 평균보다도 낮은 금리를 제시한 롯데손보를 향한 의구심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일 년 새 3조 넘게 줄어든 퇴직연금 적립금은 이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롯데손보는 올해 도입되는 새 회계제도 IFRS17 하에서 보험영업이익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만큼 퇴직연금 역마진을 최소화하는 전략적 선택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금융당국이 퇴직연금 시장의 과도한 고금리 경쟁을 막고자 행정지도까지 나섰지만, 이를 받아들여 5% 초반의 금리를 제시한 곳은 롯데손보를 비롯해 일부 은행들에 불과했다.

대신 롯데손보는 금융당국의 시장안정화 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퇴직연금 차입한도를 완화해 RP의 무제한 매도를 허용한 금융당국의 방향성에 따라 2조원 가까이 RP를 차입했다. (연합인포맥스가 3일 송고한 ''매각 앞둔' 롯데손보, 넉 달 새 RP 2兆 상환' 제하의 기사 참고)




◇ RP로 채권 매각 미루고 역마진 최소화

적극적으로 RP를 활용한 롯데손보는 여유로운 모습이다. 금융당국이 6월까지 RP 매도를 추가로 허용한 만큼, 채권 매각시기가 더욱 뒤로 늦춰진 것도 롯데손보에는 득이 됐다.

현재 롯데손보의 RP 잔액은 9천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퇴직계정에서의 투자 수익과 비우량채권 매각 차익을 통해 RP 차입규모를 점진적으로 줄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RP 부담 금리는 3.4% 수준으로 퇴직연금 부담금리보다 낮다.

IB 업계에선 롯데손보의 퇴직연금 운용자산이익률은 RP의 부담금리보다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통해 기존의 퇴직연금 적립금에서 발생한 일부 역마진까지 상쇄할 수 있었을 것이란 게 관련 업계의 예상이다.

IB업계 관계자는 "롯데손보 등 보험사들이 현재 RP를 통해 차입하고 있는 금리는 3% 초반 수준"이라며 "기존의 운용자산이익률 등을 감안할 때 RP 활용에 수반되는 이자비용을 내기에 자산운용 이익이 충분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연초 이후 시장 금리가 급격하게 안정화 추세에 접어들며 역마진 상황에 놓인 다른 보험사들과는 사뭇 다른 온도 차다.

실제로 만기 매칭을 위해 퇴직계정에서 주로 투자하는 AA-급 회사채 금리는 지난해 말 5%대 중반에서 석 달 만에 3% 수준까지 떨어졌다. 여기에 동반 하락한 국채 금리와 그간 수익률 높은 투자처로 각광받던 대체투자 역시 지난해 레고랜드 ABCP 사태로 위축됐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6% 넘는 금리를 제시했던 보험사들의 자산 미스매칭이 시장의 또 다른 위험이 될 수 있다"며 "부동산 PF가 한동안 투자 대안이었지만, 이 역시도 현재로선 당국의 정책 기조는 물론 시장 상황과 거리가 있다. 역마진 리스크가 재차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롯데손보는 내부적으로 당분간 퇴직연금 적립금을 적정 수준에서 유지하겠다는 방침으로 전해진다. 이는 지난해 말과 같은 비정상적인 금리경쟁이 재현되더라도 적정 금리를 제시해 수익성을 보호하겠다는 얘기다.

퇴직연금 적립액이 늘어날수록 자본적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 역시 향후 무리하게 적립금 확보 경쟁에 나서지 않으리라는 데에 힘을 싣는다.

실제로 그간 신용평가사들은 롯데손보의 퇴직연금 의존도를 꾸준히 지적해왔다. 1년 만기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면 유동성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하지만 롯데손보가 지난해에만 3조원 가까운 선제 물량조절에 나서면서 퇴직연금 비중은 크게 줄었다.

지난 2021년 말 10조 원에 육박했던 퇴직연금은 당시 전체 자산(18조9천112억 원)의 절반이 넘는 50.8%였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이를 34.5%까지 낮췄다.

통상 12월에 몰려있던 갱신 시기를 연중으로 분산하는 것도 긍정적이다.

한 신용평가사 연구원은 "9조원 수준의 퇴직연금을 보유하던 롯데손보가 업계 최저 수준의 공시이율을 제시하며 물량을 줄였다"며 "RP 차입에 대한 금융 비용도 발생했지만, 시장 상황상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자산 리밸런싱 시차만 관리한다면 안정적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IB업계 역시 롯데손보가 보이는 최근의 체질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롯데손보는 시장에 늘어난 보험사 매물 중에서도 알짜로 평가받는 곳 중 하나다.

IB업계 관계자는 "금융지주 등 보험사 M&A 시장 큰손들이 보는 것은 비히클보단 자산 구조와 향후 자본 확충 이슈"라며 "최근 신속한 RP 상환이나 퇴직연금 의존도 축소 등은 향후 원매자들에게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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