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필중 기자 = 코인마켓 거래소들이 시중은행에 실명계좌 검토를 요청하자 기존에 고수돼 왔던 '1사 1은행' 룰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존 규제를 고수할 경우, 코인마켓 거래소 입장에서는 실적에 따른 역량 저하의 악순환이 이어져 시장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14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지닥, 플라이빗 등 국내 코인마켓 거래소 10개사 대표들이 결성한 가상자산 거래소 대표자 협의체(VXA)는 신한은행, NH농협은행 등 시중은행 5곳에 실명계좌 발급을 위한 실사 요청 공문을 전달했다.

VXA 측에서 요청하는 점은 하나다. 기존 원화마켓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제공했듯, 동등한 사업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VXA 소속 사업자들은 "특정금융정보법시행령 제10조의 18에 담긴 실명확인입출금계정 개시 기준에 충족되는 체계를 갖추고 있어 동일한 기준에서 실명계좌 발급을 검토해달라"고 했다.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코인마켓 거래소들

코인마켓 거래소 측은 현 시장 환경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지적해왔다.

현재 가상자산 시장은 원화마켓 중심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실명계좌 발급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코인마켓 거래소들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코인마켓 거래소의 전체 영업이익은 504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원화마켓 거래소들이 흑자를 기록했던 작년 상반기에도 코인마켓 거래소는 380억 원 적자를 시현했다.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지난해 분기별 영업이익 추이
출처: 금융감독원



문제는 실적이 거래소 역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원화마켓 거래소의 평균 종사자 수는 상반기 대비 12명 증가한 272명인 반면, 코인마켓은 3명 줄어든 33명으로 나타났다.

자금세탁방지(AML) 업무 인원에서도 원화마켓은 상반기 대비 4명 늘어난 29명인데 반해, 코인마켓은 7명으로 동일하다. 인력에서도 양극화가 발생하는 셈이다.

가상자산업계 한 관계자는 "코인마켓 거래소의 상당수는 올해 넘기지 못할 수도 있는 얘기가 종종 들려온다"며 "실명계좌 발급을 받지 않는 한 상황은 더욱 열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입장에서도 실명계좌를 발급받을 유인이 현재로서는 크지 않다.

금융감독원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원화마켓 거래소들이 실명계좌 발급 계약을 맺은 은행에 지급한 수수료는 총 204억 원인데, 이는 재작년 대비 49%가량 감소한 수준이다.

크립토 윈터로 거래량이 줄어든 반면, 재량껏 관리하는 자금세탁방지 부담은 여전해 은행의 실명계좌 발급 실익은 떨어지는 상황이다. 실명계좌 계약을 맺은 거래소에서 혹시 모를 사건이 나타나 발생할 평판 리스크 역시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1사 1은행' 룰 개선 타이밍인가…"법제화로 부담 덜어 내야"

이에 '1사 1은행' 룰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현행 특금법상 사업자들이 원화마켓에 진입하려면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취득하고, 시중 은행과 실명계좌 서비스 계약을 맺은 뒤 금융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

재작년 7월 은행연합회가 실명 확인 계좌 발급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상태지만, 가이드라인 자체가 법에 근거를 두진 않고 있다.

은행 재량에 맡긴 발급 심사를 법적 테두리로 끌고 와 심사 부담을 덜어내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야 은행 역시 발급에 나설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결국 법제화된 심사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은행도 심사하든가 할 텐데, 지금은 그게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1금융권 수요가 부족하다면, 실명 계좌를 가진 증권사 등 2금융권까지 발급 주체를 넓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도 5대 거래소라고 말은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특정 거래소들이 파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공정한 시장 질서라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joongj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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