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기자 = 정부가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의 잉여 원화 자금을 일반 재정에 투입기로 하면서 논란이 거세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라는 참담한 경험을 한 국가로써 '외환 방어벽'에 대한 우리 국민의 우려는 본능에 가깝다. 정부가 부족한 세입을 꼼수로 메우기 위해 외환 방어벽을 허물려 한다는 지적도 쏟아진다.

정부의 이번 결정이 우리나라의 외환 방파제, 즉 외환보유고의 유지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재 이례적으로 많은 외평기금의 원화는 코로나19 위기 이후 정부가 달러-원 환율의 상승(원화 약세)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달러를 팔아서 생긴 돈이다. 외환당국은 2020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총 567억 달러를 팔았다.

원칙상 이렇게 발생한 원화는 향후 달러-원 환율이 하락하는 국면에서 달러를 다시 사들일 필요가 있을 때 활용하게 되어 있다. 외환시장이 언제 달러 매수 개입이 필요한 국면으로 전환될 것인지는 누구도 예상하기 어렵다. 이에 대비한 원화 자금도 당연히 갖춰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구상하는 대로 올해와 내년 약 40조 원의 원화 자금을 일반 회계로 전용하면 과연 달러-원의 하락 국면에 대응하기 어렵고, 외환보유액 유지에도 차질을 받을까? 그렇지 않다고 볼 이유가 상당하다.

우선 정부는 내년부터 다른 방식으로 달러 매수 개입 재원을 마련키로 했다. 필요시 최대 18조 원의 원화 외평채를 발행한다. 내년 20조 원의 외평기금 원화를 일반 예산으로 전용키로 한 것과 규모로 보면 별다른 차이는 없다.

또 외환시장 개입은 기재부와 한은이 공동으로 수행한다. 통상 개입 규모의 절반씩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발권력을 가진 한은의 개입 여력은 사실상 무한대다. 한은은 달러 매수 개입을 할 경우 통화안정채권(통안채)을 발행해 개입으로 풀린 원화 유동성을 회수하는데, 통안채 발행은 금통위가 결정한다.

국가 경제를 위해 '결사적으로' 달러-원의 추가 하락을 막아야 하는(필요가 있는 일일 것인지와는 별개로) 상황이 된다면 한은에 더 큰 역할을 요구할 수도 있다.

기술적으로는 당국이 스와프 거래를 활용해 당장 보유한 원화 없이도 매수 개입할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부분은 환율조작국 문제다.

미국 재무부는 ▲대미 무역흑자 150억 달러 이상▲GDP의 3% 이상 경상흑자▲1년간 GDP 2% 이상의 달러 매수 개입, 세 조건을 충족하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 대미 무역흑자와 경상흑자는 우리나라가 거의 매년 충족하는 조건인 만큼 달러 매수 개입 규모가 GDP의 2%(2022년 기준 약 335억 달러)를 넘기면 환율 조작국이 될 위험이 있다.

환율 조작국 지정 위험까지 감수할 것이 아니라면, 대대적인 달러 매수 개입은 사실상 어려운 여건이다.

이를 고려하면 이미 원화로 환전이 되어버린 외평기금의 여유 자금은 '쓰지 못하는 돈'이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원화 외평채 발행보다 현재 원화를 계속 가지고 있다가 필요한 만큼 쓰는 게 낫지 않냐고 볼 수도 있다. 일리가 있지만, 이는 현시점에서 효율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외평기금이 아니면 당장 세입 부족을 추가 국채로 메워야 한다. 재정수지 악화는 물론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또 외평기금 원화는 공짜로 보유하는 것이 아니다. 이자를 줘야 한다. 외평기금은 통상 10년 만기 금리 수준으로 공자기금에서 예치 받는데 해당 금리가 약 2.7%(2010~2021년 평균)다.

이를 일부 상환하고 1년 등 단기물 외평채로 새로 재원을 마련한다면 이자비용을 상당 규모 아낄 수 있다. 또 시장 상황이 양호해 외평채를 한도만큼 발행하지 않는다면 국가채무 부담도 줄어든다.

필요 이상 대규모로 쌓인 원화를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외환보유액 관리에 실질적 영향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번 정책은 '시기적으로' 묘수로 볼 수 있다.

우려되는 점은 외환보유액(보유 외환)에 대해 혹여 잘못된 인식을 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외평기금 원화 잉여는 외환시장 안정화 노력의 결과물이지, 세수를 메울 목적으로 달러를 판 게 아니다. 이번 조치로 인해 '외환보유액도 필요하면 꺼내 쓸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외환보유액을 재정처럼 활용하기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보유액의 조성 방식이 우리나라와 다르거나,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 일부에서 사례가 있다. 하지만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나라가 차용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방식이다.

대외건전성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사지 않으려면 외환보유액 자체의 전용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남겨서는 안 된다. 보유 외환의 매각은 오로지 시장 안정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정립해야 할 것이다.

외평기금 원화 재원의 전용 문제는 다른 기금과 달리 국회의 동의 절차를 더욱 깐깐하게 하는 것도 불필요한 오해를 차단할 바람직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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