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 자본배치로 밸류업…업계 1위 간다"

[※편집자주 : 지난해 원칙 중심의 새 회계제도 IFRS17이 처음으로 도입되면서 보험사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오랜 시간 규제 중심의 환경에서 경쟁해 온 보험사에 IFRS17은 전에 없던 새로운 도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보험사의 곳간을 책임지고 있는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의 존재감은 더 커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어깨는 더 무거워졌습니다. 이에 연합인포맥스는 좀처럼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던 CFO들의 고민을 들어봤습니다. 앞으로, 아니 이미 보험사의 '키 맨'으로 자리 잡은 이들을 소개합니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지난해 메리츠화재는 그야말로 보험산업의 판을 뒤집었다. IFRS17이 도입된 첫 해, 차별화된 이익 체력을 증명하며 삼성화재와 함께 명실상부한 손해보험업계 '양강 구도'를 구축했다.

 

선욱 메리츠화재 경영지원실장은 18일 연합인포맥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치 중심의 경영 기조를 유지해온 덕에 견조한 이익 구조와 높은 이익 창출 능력을 입증했다"며 "올해는 손보 업계 1위 자리에 도전하는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메리츠화재의 상징과 같았던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이 대표이사 자리를 1977년생인 김중현 대표이사에게 물려줬던 지난해 말 인사에서, 선 실장은 최고재무책임자(CFO)에 올랐다.

행정고시 44회로 '에이스 중 에이스'라는 평가를 받아오던 그가 금융위원회에서 메리츠화재로 자리를 옮긴 지 일 년 만에 단행된 파격 인사였다. 경제관료들 사이에서도 그의 인사는 꽤 회자했다. 관(官) 출신에게 CFO를 맡기는 일은 흔치 않아서다.

하지만 선 실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회계학 석사 과정을 밟아 누구보다 숫자에 밝은 인사다. 사무관 시절 보험과를 시작으로 금융정책과, 공정시장과, 산업금융과 등 주무 부서를 모두 거쳤다. 아직 IFRS17 안착을 위해 금융당국과의 조율이 필요한 보험업계 내 분위기를 고려하면 맞춤형 인사였던 셈이다.

선 실장은 "IFRS17의 제도 정착을 위한 금융당국의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아직은 역할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며 "새 제도 도입과 맞물려 발생한 가정의 공백에 대한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보험사들은 지난해 내내 회계 논란으로 혼선을 거듭했다. 원칙 중심의 회계 제도에 공백이 생기면서, 이전에는 없었던 판단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어가던 일부 보험사들은 IFRS17이 가진 원칙을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사용했다.

그는 "경험 통계가 부족한 경우, 그 바깥의 영역을 자의적으로 판단하기 마련인데 생보사의 단기납 종신과 손보사의 무해지보험이 대표적"이라며 "5년 남짓의 해지율 경험 통계를 이용해 향후 95년의 현금흐름을 추정하다 보니 환급률을 실질보다 높이거나 보험료를 낮추는 사례가 반복됐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낙관론으로 일관한 실손보험도 마찬가지"라며 "의료 이용량이 나날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보험사의 부담이 함께 커지는 게 분명한데도 실적에 따라 평가를 받는 경영진이 유리한 가정을 선택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메리츠화재는 높은 수익성과 건전성을 유지하며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지난해 3·4분기 연속으로 당기순이익(별도 기준) 상 손보업계 1위를 탈환했는가 하면, 연간으로는 1조5천670억 원의 순이익(별도 기준)을 내며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업계 2위에 올랐다.

메리츠화재의 턴어라운드 시점이 된 2015년 이후, 순이익은 무려 9배나 성장했다. 특히 장기손익은 업계 1위, 운용자산이익률은 대형사 중 4%대로 가장 높다.

선 실장은 "역대 최대 당기순이익을 낸 작년의 성장은 IFRS4 기준으로 80%, IFRS17 기준으로도 25%에 달하는 수준"이라며 "킥스(K-ICS ) 비율도 240%를 웃돈다. 배당 지급에 따른 가용자본이 소폭 감소했지만, 꾸준한 이익 증가로 자본이 늘고 있어 200%대는 앞으로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선 메리츠화재의 이 같은 재무적 성과의 한 축으로 ALM(Asset-Liability Management) 전략을 손꼽는다.

지난해 보험사들은 IFRS17과 함께 도입된 IFRS9 탓에 손익 변동성이 컸다. 특히 당기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FVPL)은 모든 보험사의 최대 난제로 부상했다.

선 실장은 "보험사 부채 성격이 장기적임을 고려하면 ALM 관리를 위해 장기 채권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며 "우리는 이를 FVPL로 분류하지 않아 시장 변동에 따른 손익 변화가 적다. 다만 이익은 보수적으로, 손실은 최대한 두텁게 반영한다는 원칙에 따라 리스크를 선제로 반영하고, 수익성이 좋은 투자 대상을 그룹 차원에서 선별해 투자 이익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1위에 도전하는 메리츠화재는 올해도 '똘똘한 성장'을 자신했다.

지난해 보험계약마진(CSM)은 10조5천억 원에 육박했다. 특히 4분기 들어 계리적 가정 중 코로나 종식 이후에 대한 손해율 가정이 긍정적으로 개선되며 올해도 CSM 성장 추세를 예고했다.

이 기간 20%대를 나타내며 우려 섞인 시선을 받았던 예실차의 경우 연내 한 자릿수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이에 따른 감익은 제한되리란 게 선 실장의 설명이다.

그는 "가정이 낙관적으로 바뀌면 예실차가 줄어들어 이익은 감소하지만, CSM 잔액과 상각금액은 늘어나고 손실 계약은 줄어들어 CSM과 손실부담계약 측면에서의 이익은 늘어난다"며 "최근 손해율 실적에 따른 가정 변경으로 예실차는 한자리 수로 감소할 것으로 본다. CSM 잔액과 상각금액은 늘고 손실부담계약은 과거에 비해 줄어들어 예실차 감소로 인한 이익 감소를 상쇄할 수 있는 만큼, 예실차 축소는 일어날 수 있지만 전체적인 이익 변동은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최근 업계 내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제3보험 시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메리츠화재는 무해지 상품과 수술비, 일당을 비롯한 생존 담보 중심의 장기보험 신계약 시장에 대한 수익성을 내부적으로 검토한 결과 '적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도 좋지만, 재무건전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적극적인 대응은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대신 중대 질병의 진단이나 치료비를 보장하는 전통적인 보장성 담보의 수익성은 높게 봤다. 펫보험이나 생활 밀착 담보를 활용한 상품은 이미 포화된 보험 시장을 극복하는 돌파구가 되리라 내다봤다.

이제는 비상장사인 메리츠화재는 지난해 지주에 대한 정기배당을 별도 이익 기준 40.5%로 결정했다. 메리츠금융의 확실한 '캐시카우'임을 보여주는 방증인 셈이다.

선 실장은 그룹 차원의 주주환원을 묻는 질문에 '모든 주주의 가치는 동등하다'는 말을 가장 먼저 꺼냈다. 이는 통합 메리츠가 탄생할 당시 조정호 회장이 경영 승계를 포기하는 과정에서 이야기한 '대주주 1주=소액주주 1주'와 같은 맥락이다.

화재와 증권의 상장폐지와 더불어 탄생한 통합 메리츠는 출범과 동시에 주주환원율을 순이익의 50%로 내걸었다.

최근 김용범 메리츠금융 부회장은 주식의 저평가가 지속된다면 50% 한도에 얽매이지 않고 그 이상의 자사주 매입도 가능하다고 시사했다. 절대 금액보단 충분한 배당가능 이익을 활용해 주주에게 유리한 방향을 고민하겠다는 얘기다.

당시 김 부회장은 "금융지주의 요구수익률은 10% 수준이 적절하다. 따라서 선행(fwd) PER이 10 이하일 때는 자사주 매입이 현금배당보다 유리하다"며 "다만, 자사주 매입과 배당 결정에는 수익률 비교뿐만 아니라 주주의 현금 선호 등도 파악해서 보조적으로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자사주 매입 규모 결정은 fwd PER의 역수인 자사주 매입 수익률과 세후 내부투자수익률을 비교해서 높은 쪽으로 자본배치를 하는 것"이라며 "저평가된 자사주 매입과 소각은 단기적인 주가 부양이 아닌, 주주가치 제고라는 맥락에서 중기 주주환원 기간 이후에도 지속할 계획"이라고 약속했다.

시장은 메리츠만의 주주환원 방식에 환호했다. 이미 메리츠금융은 은행 없이도 은행지주인 KB·신한과 시가총액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메리츠금융을 기업 밸류업의 모범사례로 손꼽는다.

선 실장은 "똘똘한 본래의 사업, 효율적인 자본배치, 투명하고 적극적인 주주환원, 모든 주주의 동등한 가치는 그간 메리츠가 추구해 온 방향성"이라며 "정부가 발표한 밸류업 프로그램은 이미 메리츠금융이 추진해온 내용과 유사하다. 이를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된다면, 메리츠금융은 그 과정에서 다른 금융사, 상장사들과 더 차별화된 주주환원을 단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메리츠화재 사옥
[메리츠화재 제공]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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