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의 파란만장 78년] 반도체·애니콜 신화 vs 정경유착 그늘
[이건희의 파란만장 78년] 반도체·애니콜 신화 vs 정경유착 그늘
  • 이미란 기자
  • 승인 2020.10.2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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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미란 기자 = 이건희 회장이 직접 나서서 '삼성의 품질만은 믿어달라'고 외쳐댄 강력한 메시지에 거인 삼성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2020년 브랜드 가치가 623억달러로 글로벌 5위를 차지하고, 스마트폰과 TV, 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상품을 내는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신경영 선언 이후 이건희 회장은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한다"며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꼽았다.

1995년 8월 마침내 애니콜은 전세계 휴대전화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라섰다.

당시 한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였다.

1996년은 '디자인 혁명의 해'로 선언하고 디자인 경쟁력 강화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가 삼성의 차세대 주력으로 육성한 애니콜의 인기는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S 시리즈 등 모바일 기기의 혁신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2002년에는 이건희 회장이 개발 단계에서부터 디자인을 챙긴 조가비 형태의 휴대전화 SGH-T100이 나왔고, 글로벌 1천만대 판매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회장은 2005년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주요 사장들을 소집하고 '디자인 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삼성의 디자인 경쟁력이 1.5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제품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간은 평균 0.6초인데 이 짧은 순간에 고객의 발길을 붙잡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밀라노 4대 디자인 전략'도 발표했고 이듬해 출시된 와인잔 형상의 보르도TV는 2006년 한 해에만 300만대가 판매되며 세계 TV시장의 판도를 뒤바꿨다.

이 회장은 2000년 신년사를 통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보다 먼저 변화의 흐름을 읽고 전략과 기회를 선점하는 것"이라고 밝히며 삼성 디지털 경영의 원년을 선언했다.







1970년대부터 반도체가 새로운 시대의 먹을거리가 될 것이라고 본 이 회장의 통찰도 빛을 봤다.

특히 이 회장은 반도체 산업이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환경에서 1986년 1메가 D램을 생산하며 걸음마를 뗀 후 1992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64메가 D램을 개발하면서 반도체 강자가 됐다.

삼성 반도체가 메모리 강국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하며 세계 1위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이후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 번도 글로벌 1위를 내주지 않고 질주했다. 2018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했다.

삼성은 세트(완제품)에서도 글로벌 1위를 제패한 전무후무한 IT 전자 기업으로 우뚝 섰다.

1969년 흑백 TV를 생산한 이후 37년 만인 2006년 글로벌 TV 시장에서 소니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고, 2012년에는 갤럭시 시리즈로 애플을 따라잡고 스마트폰 시장 세계 1위를 달성했다.

이 회장 취임 당시 9조9천억원이었던 그룹의 매출은 2013년 390조원으로 25년 만에 40배나 성장했으며 수출 규모도 63억 달러에서 2012년 1천567억 달러로 25배 커졌다.

시가 총액은 1987년 1조원에서 2012년 300조원을 넘어섰다. 총자산은 500조원을 돌파했다.

고용 인원(글로벌 기준)도 10만여명에서 42만5천여명으로 늘었다.

한국 산업 역사를 다시 쓴 거인인 이 회장에게도 실패를 맛본 분야가 있었다.

그가 청년 시절부터 꿈이자 필생의 도전으로 여겨 온 자동차사업 부문이다.







이 회장은 미국 유학 시절 자동차에 심취했다.

자동차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자동차 구조에 관한 한 전문가 수준이 됐다.

유학기간에 여섯 번이나 차를 바꿨고, 에세이에서 "나는 자동차 산업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공부했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전 세계 웬만한 자동차 잡지는 다 구독해 읽었고 세계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 경영진과 기술진을 거의 다 만나봤다"고 고백하는 등 차에 매료됐다.

1987년 회장에 취임하고서는 자동차사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후 부산 신호공단을 근거지로 상용차 사업에 뛰어들고 이어 승용차 사업에 출사표를 던진다.

1995년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이 착공되고 프로젝트명 KPQ(SM5)의 시승회도 열린다.

그러나 당시 삼성자동차는 차 한 대를 팔 때마다 150만원의 손실이 나던 사업체였다. 기아차 도산 사태와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금융당국은 삼성에 결단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만 해도 3만여명이 직장을 떠나야 할 정도의 위기였다.

이 회장은 결국 삼성자동차를 법정관리에 맡기고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채권단에 증여하기로 약속한다.

삼성자동차는 2000년 르노에 인수됐다.

이 회장은 비자금 사건과 노동 탄압 등으로 한국 재벌의 전 근대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1995년 11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 당시 대검 청사로 불려가 중앙수사부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2003∼2004년 대선자금 수사 때와 2005년 안기부 X파일 도청사건 수사 당시에는 소환될 위기를 넘겼으나 2008년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비자금 조성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로 다시 조사를 받았다.

2007년 10월에는 삼성그룹 옛 구조조정본부(당시 전략기획실)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가 이 회장의 지시로 금품 로비를 하고 자신 명의의 비밀계좌로 50억원대의 삼성 비자금이 관리됐다고 폭로했다.

'삼성 비자금 특검법'이 제정된 뒤 2008년 초 출범한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삼성 관련 의혹들을 수사한 뒤 경영권 편법승계에 이용된 에버랜드 전환사채(CB)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배임), 조세포탈 등 3가지 혐의로 이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그 과정에서 이 회장이 관리해온 4조5천억원대의 차명재산도 드러났다.

이 회장은 기소 직후인 2008년 4월 자신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지배구조 개선방안 등이 포함된 경영쇄신안을 내놓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재판 결과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관련 혐의(배임)엔 무죄가 선고됐으나 나머지는 유죄가 인정돼 이건희 회장은 2009년 8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천100억원이 확정됐다.

하지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이건희 회장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재계와 체육계 등의 건의에 힘입어 유죄 확정 4개월 만에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단독 사면을 받았다.

이 회장은 그로부터 3개월 뒤인 2010년 3월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노동조합에 관해서 이 회장은 '파괴하는 노조, 거저먹는 노조'는 용납하지 않겠다며, '무노조 경영 철칙'을 고집했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과 삼성전자 회장 외에도 한·일경제협회 부회장(1981년), 대한아마추어레슬링협회 회장(1982∼1997년),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상임위원(1982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1987년),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1993∼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1996년) 대한레슬링협회 명예회장(1997년), 한국장애인복지체육회 회장(1998년),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특별고문(2002년), KOC 이사(2009년) 등을 지내며 경제계, 체육계 등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했다.

특히 2009년 사면 후 1년 반 동안 170일간 해외 출장을 다니며 IOC 위원들을 만나면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기여했다.

mr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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