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정현 기자 = 한국은행 제1의 책무인 '물가'를 매달 발표하는 것은 정부(통계청)다. 반대로 정부의 성적표인 '성장률'은 한은이 매 분기 집계한다.

왜일까. 견제와 균형을 고려한 조치로 이해된다. 책무를 달성하려는 의지가 과도하면 어떤 식으로든 통계도 왜곡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 이를 사전에 방지한 것이다.

한은과 정부의 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적절하다는 인식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성장률을 제고하려는 열망이 너무 강하면 금리인하를 바라게 되고 고물가를 둔화하려는 갈망이 과도하면 경제 둔화를 바라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각자 담당하는 책무가 있기에 일정 부분 거리를 둬야 독립성을 보장하기 용이하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칙이다.

아울러 과거 역사를 돌아봤을 때 독립성이 더욱 요구되는 쪽은 한은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간 실제로 한은의 독립성이 중요하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돼왔다. 여전히 한은법상 존재하는 정부의 '열석발언권'이 이제는 사문화되다시피 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최근 한은의 독립성 우려가 부쩍 제기된다. 금통위원이 대통령으로 직행한 사례가 처음으로 나타나면서다.

지난달 30일 박춘섭 한은 금통위원이 대통령실 경제수석에 발탁됐다. 지난 4월 금통위원 임기를 시작한지 7개월 만에 사퇴하면서 최단기간 금통위원 타이틀을 달았다. 금통위원 임기 중 대통령실로 직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전직 금통위원은 "금통위원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 신임 수석은 지난 1일 한은을 떠나며 "아쉬운 건 다섯 번 통화정책 회의를 했는데 동결만 하다가 가는 것"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그러면서 "어제(30일) 용산에서 동결만 하다가 왔다고 그러더라"고 덧붙였다.

박 수석이 "용산에서는 (금리결정) 관여를 안 할 것"이라고 첨언하기는 했지만 일각서 우려가 나타나는 이유다.

박 수석과 이창용 한은 총재와의 만남은 더 잦아질 수 있다. 일요일마다 열리는 이른바 F(Finance)4 회의에서 마주할 가능성이 커졌다.

독립성을 우려하는 시각에 대한 한은의 문제의식은 크지 않은 듯하다.

이 총재는 지난달 30일 열린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F4 회의와 관련한 한은 독립성 질문에 대해 "한은이 정부를 만나서 정부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은 안 하나. 정부의 독립성이 자꾸 사라진다고 왜 거꾸로 안 물어보냐"고 반문했다.

물론 이 총재의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을 수 있다. 물가에 중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펴겠다는 의지도 크다.

이 총재는 지난달 30일 "물가상승률이 2%대 목표수준으로 충분히 수렴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까지 (긴축기조를 지속할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지금 상황에서 보면 6개월보다 더 될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도 했다.

다만 그간의 사례에 비춰 독립성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어 보인다.

물가가 둔화 흐름에 있긴 하지만 아직 승리를 선언하기에는 이르다. 물가목표 수렴에 다가가기 위한 금통위의 판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jhkim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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