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정지서 기자 = 금융당국이 제시한 워크아웃 채권 매각 가이드라인을 두고 은행권이 공정거래법 위반 가능성을 제시하며 반기를 들었다.

4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전일 은행들과 워크아웃 채권 매각업무 가이드라인 제정을 위한 첫 번째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진행했지만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했다. (연합인포맥스가 4일 송고한 '금융당국, 워크아웃 채권매각 가이드라인 마련…시작부터 파행' 제하의 기사 참고)

◇ 가이드라인 제정, 공정거래법 위반…시장 자율성 침해

은행들은 부실기업 채권의 매각 대상과 매각 방식, 평가나 협의 절차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것 자체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하는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공정거래법 제19조는 사업자에 대한 부당한 공동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은행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특정 기업의 부실채권을 매각하는 과정이 주체의 시각에 따라 부당한 공동 행위, 이른바 '담합'으로 해석될 수 있는 셈이다.

특히 은행들은 공개 입찰로 진행되는 부실 채권 매각의 최소 매각 가격, 그리고 협의 매각의 매매 기준 가격을 산정하는 기준을 제정하는 부분을 두고 난감해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법상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결정하거나 유지하는 행위도 명백한 금지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가격 기준 제정은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통해 금융당국이 부실 채권의 가격 결정에 간접적으로 참여할 여지를 준다는 의견도 나왔다.

기업 구조조정의 방향을 정부나 금융당국이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엔 업계도 수긍했다. 하지만, 매각 과정에선 공급과 수요에 의한 시장 경쟁이 이뤄져야 하는데 가이드라인이 제정되면 그 범위가 크게 제한된다는 데 업계는 우려했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가격을 결정하고 거래상대방을 제한하는 것 모두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다분한데 이에 대한 검수가 진행되지 않은 것 같다"며 "행정지도가 아닌 가이드라인으로 제정될 경우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담합 관련 문제에서 모든 책임은 은행에 지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은행의 효율적인 채권 매각을 도와주는 취지지만, 사실상 은행과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요소가 더 많다"며 "가이드라인이 제정될 경우 최대 수혜자는 부실채권 매각에 애먹는 유암코 뿐이다"고 지적했다.

◇ "CD금리 담합도 안 끝났는데"…누구를 위한 지침인가

이처럼 은행들이 공정거래법 위반 가능성을 두고 우려하는 이유는 시기의 민감함도 더해졌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달 중 전원회의를 열어 시중은행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혐의에 대한 최종 결론을 마무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보신주의에 대한 지적과 함께 수차례 은행권을 정조준해왔다.

2011년부터 진행된 시중은행의 CD금리 담합을 비롯해 4대 시중은행 대상 예금금리 짬짜미, 외국계 은행의 외환 스와프 담합 등이 그 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칼끝이 수차례 은행권을 향하자, 업계는 선제로 '조심하자'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에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제정과 관련해 은행들이 업계 공동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검증을 먼저 요청하기도 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을 향한 공정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스스로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지 오래다"며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사례처럼 업계 스스로 공정위에 검증을 요청하는 사례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다분한 워크아웃 채권매각 가이드라인이 업계에 반가울 리 있겠느냐"며 "공정위의 담합 논란은 은행이 비켜가야 할 가장 큰 산이라 이번 가이드라인 제정에도 적잖은 잡음이 동반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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