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해마다 수조원대의 이익을 내면서도 정작 대출 금리를 내리지 않는 시중은행들의 영업행태에 제동을 거는 법안이 발의돼 은행권이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은행권은 법안을 통해 가격변수인 금리에 손을 대는 법안 자체가 말이되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손쉬운 '이자놀이'로 엄청난 수익을 거두고 있다는 지적에는 신경을 쓰는 눈치다.

특히 새 정부 출범으로 서민금융에 대한 정책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대놓고 반발하지는 못하고 있다.

◇'서민 외면한' 대출금리…은행은 '어닝서프라이즈'

18일 금융권과 정치권에 따르면 바른정당 홍문표 의원은 은행의 여ㆍ수신금리 변경 시 금융위원회 승인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은행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지난 3월 발의됐지만 그간 국회가 사실상 공전 상태여서 심도있는 논의가 진행되지는 못했다. 다만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회 일정도 정상화하면서 향후 공청회와 상임위원회 등 논의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법안은 은행이 예금 금리나 대출금리를 올리거나 내릴 때 이를 산출한 근거를 금융위에 제출토록 하는 게 핵심이다.

한 번 인상되기 시작한 대출금리가 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돼도 이전 수준으로 인하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금리 인상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만기 지난해 6월 말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만기 10년 이상 분할상환) 평균금리는 2.74~3.36% 수준에서 지난해 말에는 2.91~3.60% 수준으로 올라갔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기준금리 인상을 이유로 확대된 불안감이 시장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며 대출금리 인상을 부추겼다.

이후 시장금리가 다소 안정됐지만 대출금리는 지난해 연말 수준을 유지했다. 지난 4월 말 기준 평균금리는 3.04~3.58%이다.

반면 1년 만기 정기 예금 상품의 평균금리는 1.10~1.80%로 지난 1년간 큰 차이가 없었다.

금리가 출렁인 지난해 하반기 이후 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인상된 수준의 대출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은행이 대출금리를 인상할 때 신중을 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정치권에서 제기됐다.

특히 늘어난 대출과 금리상승에 힘입어 은행이 매 분기 '어닝 서프라이즈' 행보를 이어가자 손쉬운 이자놀이를 향한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실제로 지난해 시중은행의 당기순이익은 5조5천억 원으로 전년보다 32.5%나 성장했다. 국내 은행의 총자산이익률(ROA)과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지난해 최저치를 다시 경신했다.

부동산 경기 호황으로 주택담보대출 중심의 가계대출이 늘어나며 은행의 이자이익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올해도 이러한 추세를 이어간 은행권은 지난 1분기 2조2천억 원(25.9%)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 가격변수 '금리' 결정, 은행에만 맡겨도 되나

떨어질 줄 모르는 대출금리와 은행의 호실적이 맞물리며 정치권에선 금리 결정권을 은행에만 맡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홍문표 의원실 관계자는 "시장의 위험 요소가 해소된 이후에는 금리가 인하돼야 하지만 현실에선 어렵다"며 "특히 예금 이자보다 대출 이자가 비싸게 책정돼 서민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아 이를 구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리 결정권에 금융당국의 의사를 반영토록 하는 법안에 대한 은행권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최근 금융당국은 법안에 대해 취지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금리나 수수료, 임금 등 가격변수에 대해 금융당국이 민간 금융회사에 개입하는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기 힘들다는 게 이유다.

금융위 관계자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은행에 경고할 순 있지만, 금리를 결정하는 의사 과정에 당국이 직접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미국과 유럽, 일본 등 금융 선진국도 가격변수에 당국이 직접 지시를 내리는 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은 금리와 같은 가격변수에 당국이 개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를 고수해 온 당국의 정책 기조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새 정부가 서민금융을 경제 정책의 주요 캐치프레이즈로 언급한 만큼 은행의 이자놀이를 향한 비난이 구체화한 액션 플랜으로 나타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통상 대출금리는 내부적으로 충분한 검토를 거쳐 진행하며, 최근엔 금리 인하 요구권 등을 통해 소비자를 보호하고 있다"며 "서민금융을 위해서라면 이를 위한 별도의 구제안을 마련해야지, 은행산업의 근간을 흔들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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