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변명섭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다국적 통신업체 퀄컴과 본격적인 법적 분쟁을 앞두고 퇴직 고위 공직자들의 상대측 변호인 합류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그동안 공정위 출신의 고위 관료가 상대측 변호인단에 합류한 것이 관련 소송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있었던 만큼 우려도 커지고 있다.

23일 국회 등에 따르면 공정위가 법적 분쟁을 겪다 패소한 사건 중 72%가 김앤장, 율촌, 태평양 등 대형로펌에 집중돼 있다. 최근 5년 동안 공정위 4급 이상 퇴직자 20명 가운데 17명이 대기업(13명)과 대형로펌(4명)에 재취업했다.

특히 지난 3월에는 노대래 전 공정위원장이 법무법인 세종의 고문으로 합류했다. 법무법인 세종은 화우, 율촌과 함께 퀄컴 측이 공정위에 행정처분 취소 소송을 맡긴 법률 대리인이다.

이달 안에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공정위와 퀄컴의 법적 분쟁에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상대측 변호인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된 셈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이유로 다국적 통신업체 퀄컴에 1조3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퀄컴은 이에 반발해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처분 취소 소송을 냈고 이달 안에 소송의 법적 절차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위가 전 공정위원장의 법무법인 재취업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9일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정위 고위 공직자의 재취업 문제가 계속 나오는데, 퀄컴과 소송을 앞두고 노대래 전 공정위원장이 퀄컴측 대리인인에 고문으로 재직하는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공정위 출신 퇴직자들의 재취업에 대해 신뢰제고 방안을 이미 발표했고 추가로 직무 연관성이 있는 곳에 대한 재취업에 대해서는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답변했다.

공정위는 지난달말 내부 신뢰제고 방안의 일환으로 기업 등에 대한 조사권한을 지닌 부서를 선별적으로 지정해 해당 부서 5~7급 직원도 취업심사대상으로 확대 적용하는 안을 확정 발표했다.

공정위는 논의 과정에서 4급 이상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재취업 제한을 더욱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확정안에서 이를 반영되지 않았다.

이미 공직자윤리법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위만 따로 고위공직자의 취업을 막는 안을 만들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공정위 한 전직 관료는 "헌법에 명시된 직업선택의 자유, 공직자윤리법 등을 다양하게 고려한 적절한 개선안이 나와야 한다"면서도 "공정위 퇴직자들의 양심을 믿어보는 방법 외에 추가로 대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공정위원장이 퀄컴측 대리인단에 합류한 것을 현행법으로 막기는 어렵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전직 공정위원장이 상대측 변호인단에 속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내외부적으로 논란만 커지고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퀄컴 소송도 공정위 전직 관료가 연결돼 있어 솜방망이 판결이 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대형마트 3개사 무혐의 처분, 금호아시아나그룹 기업어음 거래 무혐의, SK그룹 일감몰아주기 과징금 취소 판결 등이 대표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실제로 재취업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직급은 4급 이상 고위 관료라 할 수 있다"며 "이를 반영하지 않고 공정위 신뢰를 바로잡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고 전했다.

msb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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