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유럽중앙은행(ECB)의 차기 총재직을 놓고 독일계 매파 후보가 승기를 굳히는 분위기였지만 반대 진영이 유럽연합(EU) 법의 맹점을 발견하면서 양측의 물밑싸움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옌스 바이트만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는 임기가 1년가량 남은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후임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이자 ECB 내 매파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의 중앙은행 수장이라는 상징성과 지금까지 독일 출신이 한 번도 맡지 않았다는 점, 부총재가 남유럽 출신인 만큼 북유럽 출신이 ECB 총재를 맡아야 한다는 논리는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ECB 내 비둘기파 구성원들은 그런 바이트만 총재를 탐탁지 않았지만 마땅한 대응책이 없었다. 특히 유로존 내 또 다른 핵심국인 프랑스 출신의 브누아 꾀레 집행이사는 독일을 견제하고 싶었지만, EU 법상 집행위원은 총재 후보군에서 배제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손 쓸 도리가 없었다.

WSJ은 하지만 ECB의 집행위원도 총재직에 출마할 수 있다는 EU법 해석이 나오면서 꾀레 집행이사도 주요 차기 총재 후보로 부상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EU 법상 ECB 총재를 비롯한 6명의 집행이사는 8명의 임기를 보장받지만, 재신임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ECB의 변호사들은 꾀레 이사처럼 아직 임기가 남은 집행위원들이 일단 보직을 사퇴하면 ECB 총재직에 다시 도전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번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이는 EU법의 맹점을 이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벨기에 리에 대학의 피테르 반 클레이넨브뢰겔 EU법 전문 교수는 "이 같은 전례는 없지만 향후 ECB 총재가 되기 위해 이사회에서 사퇴하는 것은 법적인 관점에서 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WSJ은 ECB 내에 공식 직함은 없지만, 드라기 총재가 꾀레 이사 등에게 고문 등의 자리를 제안할 수 있다고 전했다.

ECB 관계자들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바이트만 총재를 견제하려는 것은 그가 ECB의 의사 결정 방식과 종종 충돌을 빚었기 때문이다.

ECB는 전통적으로 정책 위원들의 합의에 따라 정책 방향을 결정해왔다. 그러나 바이트만 총재는 곧잘 개인과 독일의 입장을 단독으로 드러내곤 했으며 자산매입 프로그램의 위법성을 심판해달라며 독일 법원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25명의 정책위원 중 몇몇은 사적으로 바이트만 총재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그럼에도 6명의 집행이사를 제외한 나머지 18명의 유로존 각국 중앙은행 총재 중 뚜렷한 대항마는 찾기 힘들었다.

블랙록의 마틴 루엑 수석 독일 투자 전략가는 "드라기 총재의 후임자는 ECB의 틀을 다시 짤 것"이라며 "하지만 선택의 폭은 매우 좁다. 바이트만 총재 외에 누가 있는가"라고 말했다.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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