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정부가 요동치는 국내 금융시장을 방어하기 위해 채권시장안정펀드(이하 채안펀드)와 증시안정기금(이하 증안기금)이라는 카드를 모두 꺼냈다.

펀더멘털과는 무관하게 속절없이 추락하는 시장의 가치를 방어하고자 유동성을 집중적으로 공급함으로써 안전판을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다만 채안펀드와 증안기금 모두 금융권 출자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은행 등 민간 금융회사의 협조가 적극적으로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주재한 첫 번째 비상경제 회의에서는 시장의 변동성에 대응하고자 채안펀드와 증안기금을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채안펀드와 증안기금은 정부가 시장을 방어하는 일종의 마지노선이다.

시장의 변동성에 대응하는 컨틴전시플랜에 항상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실제 가동은 금융위기와 같은 국가적 재난상태에서만 이뤄진다. 그만큼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현 상황을 위중하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 채안펀드 10조+α…커지는 한은 역할론

채안펀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지난 2008년 기업의 자금 조달을 돕기 위한 방안으로 당시 10조원 규모로 마련된 바 있다.

정부는 현재 90여 개 금융회사와 '캐피탈 콜' 방식으로 채안펀드 운용을 위한 협약을 맺은 상태다. 지난 1999년에는 채권안정기금이 있었다. 이는 기금이 조성되는 즉시 특정 채권을 집중적으로 매입해 기금을 소진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채안펀드는 국고채 이상의 'BBB+' 등급 이상의 금융채, 회사채, 여전ㆍ할부채, 프라이머리 CBO(채권담보부증권) 등에 골고루 투자한다. 특정 시장의 실패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번에 조성할 채안펀드 규모가 10조원을 웃돌 수 있다고 시사했다. 정부의 상화 인식이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심각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채안펀드가 10조원+알파(α)의 규모로 조성된다고 하더라도 시장을 방어하는 데 충분할지는 미지수다. 외환위기 당시 조성됐던 채권안정기금의 경우 한도가 20조원이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시장 변동성이 커졌고 정부는 10조원을 더 증액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10조원 규모의 채안펀드 규모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초기 설정 규모 이후 시장 상황에 따라 늘릴 수 있는 부분이고 이에 대해선 출자 기관에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며 "실패하는 시장이 없도록 유동성을 적시에 공급할 수 있는 안전판을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금융권에서 한국은행의 전폭적인 지원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일단 내일 이야기를 전달받아야 하지만, 한은이나 연기금, 산은 등 굵직한 출자 주체와 백업 지원이 있어야 은행도 결정을 할 수 있다"면서 "시장은 줄어드는 한도를 선반영한다. 은행도 자기자본이 중요한 시기라 한도 없이 지원할 순 없다"고 말했다.

채안펀드의 세부적인 운용 주체와 방식은 내주 예정된 2차 비상경제회의를 거쳐 진행된다. 정부는 출자기관 중심으로 운용협의회를 구성해 자금운용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 증안기금 '셀 코리아' 막을까…규모가 관건

이날 코스피는 장중 1,500선을 밑돌았고 코스닥지수는 500선이 붕괴했다. 연일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자 정부는 패닉장의 구원투수로 증안기금을 꺼냈다.

증안기금이 국내 증시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1990년 5월이다. 당시 증시안정화를 목적으로 25개 증권사를 비롯해 은행과 보험, 상장사 등이 660여개 기관이 4조535억원 규모로 출자했다.

민법상 조합형태로 설립된 이 기금은 당초 3년이란 기간을 두고 출범했지만, 시장 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한 차례 연장됐다. 정식으로 해체된 건 지난 1996년이다. 기금은 출자한 금융기관에는 주식으로 되돌려줬고 상장사에는 주식을 매각한 뒤 현금으로 돌려준 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증안기금이 해체된 것은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추진하면서다. 주가지수 선물시장이 개설되는 등 자본시장이 발전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인위적으로 증시를 부양한다는 비난을 받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증안기금은 비상대책으로 꾸준히 거론됐다. 2001년 미국의 테러 사태와 2011년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주가가 폭락했던 때가 대표적이다.

증안기금이 부활하지 않는 것은 실효성 때문이었다.

증안기금은 외국인 투자자가 '셀 코리아'에 나설 때 이를 방어하는 역할이 크다. 하지만 2011년의 경우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로 시가총액만 300조원에 달했다. 수조원의 기금을 조성하더라도 시장을 방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컸다.

증안기금이 투입될 경우 대규모 매물이 출회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통상적으로 출자기관들은 증안기금이 개입할 경우 매도 자제나 순매수 유지에 대한 협약 등을 맺지만, 외국인과 개인은 이를 계기로 매도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 채안펀드와 증안기금 모두 규모가 성패를 좌우한다"며 "금융시장이 망가져도 정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비난에 못 이겨 보여주기식으로 기금을 조성한다면 소용없다. 획기적인 실행 계획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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