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기업경영에 필수 요건으로 인식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대한 중요성이 빠르게 자리 잡았다. 각국의 정부나 정책입안자와 감독기관 등은 ESG 관련 정보공시를 법제화하거나 자율 규정을 정비하는 추세다. 투자의사 결정에 반영하는 ESG 정보공개의 범위와 깊이 확대를 위한 글로벌 움직임 역시 강화되는 추세다.

하지만 ESG가 용어 그대로 환경·사회·지배구조 전반을 다루고 있는 것이니만큼 그 대상이 광범위하고 정성적인 내용을 다루게 되어 평가기관이나 기업, 정부조차도 일관된 기준을 제시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 투자자들과 평가기관마다 그들의 투자철학과 가치에 따라 각기 다른 ESG를 가지게 될 것이다. 또 각 국가별로도 ESG 이슈 중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고 사회적인 합의 수준도 상이한 상황에서 유럽이나 북미가 주도하는 글로벌 ESG 평가로 인해 기업구조가 국제 규격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글로벌 이니셔티브 및 평가사의 ESG 평가에서 공통적으로 보고되는 항목과 지표를 정리하여 국민연금의 ESG 평가체계에 흡수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국민연금 ESG 투자는 수탁자책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접근한다. 즉, ESG가 수탁자책임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수탁자책임에 ESG가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은 기본 ESG에 내포된 기본 개념 외에도 사회보장제도로서의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과 가입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공적연금이기에 전체 국민을 가입자로 하는 국민연금은 국가경제와 국민들의 후생을 침해하지 않도록 투자원칙을 정하고, 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간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활동이 ESG를 도입한다고 해서 획기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의 활동이 ESG와 맥락을 같이 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탄소배출과 관련된 사항에서 향후 계속적으로 탄소배출 기업에 대해 국민연금이 장기적인 신뢰와 투자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이는 탄소배출 기업이 나쁘다는 정서적인 입장이 아니라, 향후 탄소배출로 인한 비용의 부담이 기업의 이익을 해하고 더 나아가 기업의 존립에도 위협이 될 수밖에 없는 규제환경을 고려한 것이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기업의 행동은 즉각적으로 소비자 운동으로 연결되는 현실을 보았을 때 문제기업들이 경영활동을 정상적으로 유지하여 투자자인 국민연금이 손실이 나지 않도록 기업에 대한 모니터링과 주주관여 활동 등이 요구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외부의 많은 사람들이 국민연금의 이런 활동이 지지부진하며 속도가 매우 더디다고 비판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민연금은 각 절차와 행동이 모두 사전적으로 마련된 원칙과 일관성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업과 가입자 모두에게 독립성과 시장의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활동은 우발적인 게 아니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한발씩 느리지만 확실하게 나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실무적으로 ESG의 최종 판단은 투자자들의 몫이다. 실제 ESG란 장기투자기관들이 기업의 비재무적 위험과 기회요소를 판별하기 위한 분석틀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에 따라 독특한 특징과 개성이 있다. 그렇기에 투자자들은 여러 ESG 평가 내에서 주관적 가치와 목표를 견지하면서도, 다양한 재무평가 방법과 ESG 평가 및 데이터들을 통해 자신의 투자 목적에 맞는 내용을 찾아 이를 기업에 적용할 수 있으면 될 것이다. 지구 환경을 고려한 생산과 소비 유통, 사회적 책임에 입각한 경영활동, 건전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는 변할 수 없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무조건적으로 해외에서 수립된 기준대로 ESG를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모든 국가마다 나름의 특성과 산업구조로 일관된 ESG 기준이 마련될 수 없다. 이런 입장에서 ESG의 핵심가치에 기반한 우리나라만의 기준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SG 기준도 기업별로 특성에 맞는 가치를 수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최근 ESG 열풍이 반가우면서도 이것이 단순히 수익률이나 기업 이미지 개선으로 광고되는 것에 대해서 경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래에 ESG 용어가 변한다고 하더라도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기업의 비재무적 핵심가치로서 영원히 작동하기를 희망한다.

정부는 ESG 공시에 있어서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체계적인 ESG 평가가 이뤄질 수 있는 ESG 평가 산업의 시장 메커니즘과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조용한 착한 사람이 소외되지 않도록 어떻게 노력하여야 할지 최근의 ESG를 보면서 가지는 고민이기도 하다. (원종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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