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국제사회에서는 디지털세와 글로벌 법인세 최저한도 도입을 위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기획재정부는 지난주 그 상황을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들에게 알렸다. 언론과 해당 기업들이 그 파장을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개별기업의 손익보다는 더 큰 것을 보아야 한다. 디지털세는 초우량기업들의 문어발식 경영과 조세전가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논의는 가뜩이나 높은 우리나라 법인세율의 추가 인상을 유발하고 소득불평등을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 거시경제적 효과들이야말로 우리가 짚어봐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디지털세 도입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 세금 도입목적이 글로벌 기업이 부담해야 할 총납세액(법인세)이 정해진 상태에서, 그 세금을 나누어 납부하는 방법을 정하는 것이 디지털세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사업장(현지법인)도 두지 않은 채 매출만 늘리고 세금은 다른 나라에서 내는 경우가 있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초우량 글로벌 기업들이다. 플랫폼기업들의 이런 폐단을 없애는 '국가간 법인세 갈라먹기'가 곧 디지털세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디지털세가 판매세(sales tax)의 성격을 갖게 되면 소비자가 피해를 보게 된다. 디지털세의 부과 대상은 글로벌 총매출액 중에서 글로벌 영업이익 비중이 상당히 큰 대기업이므로 세금산정의 출발점이 매출액이 된다. 매출액이 클수록 디지털세의 적용 가능성이 커지므로 판매세의 성격을 갖는다. 그리고 모든 판매세는 소비자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는 특징이 있다. 즉 서비스와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는 것이다.

디지털세가 판매세의 성격을 갖게 될 경우 다른 부작용도 있다. 초우량 글로벌 대기업들이 박리다매 형식으로 매출액을 늘리거나 문어발식 영업확장을 통해 사업규모를 불리면 이익률이 낮아져서 디지털세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외국의 다국적기업이 자국 안에서 세금도 내지 않고 이익만 거두는 것을 막으려고 도입하는 세금이 오히려 해당 기업의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그저께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우리 기업과 과세권 배분에 미치는 영향을 국익 관점에서 철저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으나 거기에 소비자와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뿐 아니라 정치권이 생각해야 할 문제도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논의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제시한 것이다. 미국 기업들이 아일랜드 등 조세천국(tax heaven)으로 빠져 미국의 법인세 수입이 감소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목적이 있다. 거기에 다른 주요 7개국(G7)도 동의했다.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법인세율을 경쟁적으로 낮춰온 주요 선진국들이 미국의 제안에 동참하는 것은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수준보다 높아 기업들이 상당히 불만을 가져왔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법인세율 인상 움직임이 생기면 우리나라도 덩달아 세율 인상의 가능성이 커진다. 가뜩이나 국가채무비율이 상승하고 재정적자가 확대되는 터라 정치인들이 유혹을 느끼기 쉽다.

그런데 법인세는 '사실상의' 간접세라 법인세율의 인상은 소득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킬 개연성이 있다. 법인세 즉, 법인소득세는 틀림없이 직접세에 해당한다. 그러나 법인은 투표권이 없다. 결국 유권자의 조세저항을 줄이기 위해 법인이라는 의제(擬制) 인격에 과세하는 것이 법인세다. 법인이라는 방파제를 거쳐 세금을 거두면 소득 불평등 해소 노력 즉, 소득이 많은 유권자를 향한 직접적인 과세는 유보된다.

어느 나라에서나 심화되는 소득 불평등 해소를 위해선 결국은 부자과세가 불가피하다. 그런데 세수 확대의 편의를 위해 개인소득세가 아닌 법인세 의존도를 높이는 것은 부자 과세를 애써 외면하는 행정 편의적 요소가 숨어 있다. 앞으로 법인세율 조정을 논의할 때는 이런 문제까지 짚어 신중하게 논의가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자 과세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개미투자자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법인세 증액이 중산층의 부담을 키울까 봐 드리는 충언이다.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노미스마(nomisma)'는 그리스어로 화폐와 명령(법)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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