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시장에는 2013년의 테이퍼 탠트럼(taper tantrum)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있다. 우리말로는 '긴축 발작'으로 번역되는데, 긴축이라기보다는 중앙은행의 자산매입 규모 축소(이하 테이퍼링)가 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버냉키 미국 연준 의장의 테이퍼링 언급은 채권가격 급락, 즉 금리 급등을 야기했고 신흥시장에서의 자금이탈(주가 하락, 금리 상승)과 통화가치 하락(달러 강세)으로 이어졌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인가?

우선 테이퍼링이 거론되는 이유는 코로나 위기대응 조치들이 더는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나아가 부작용이 우려될 정도로 경기회복 속도가 빠르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1분기 성장률(전분기 대비 연율)이 6.4%를 기록했고,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0%까지 치솟았다. 주식뿐 아니라 주택가격의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자산 버블과 불평등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경제 및 금융 상황을 배경으로 지난달 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이후 파월 의장은 테이퍼링 '논의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FOMC 위원들의 금리 인상 예상 시기가 이전보다 앞당겨졌다는 점이 시장 주목을 받았다. 3월 정례회의에서는 2023년까지는 제로금리가 유지될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는데, 2023년 인상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는 변화가 생긴 것이다.

7월 7일 공개된 의사록을 보면 테이퍼링 논의에 대한 논의가 잘 드러난다. 연준은 매달 800억달러의 국채와 400억달러의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하고 있는데, 테이퍼링을 시작해야 할 조건들이 예상보다 빨리 충족될 것이라고 여러 위원이 언급했다. 일부는 노동시장과 인플레이션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하며 테이퍼링 선언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었으나, 전반적으로는 좋은 여건에서(well positioned) 채권매입 규모를 축소하는 게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일부 위원들은 주택가격 상승압력 관점에서 주택저당증권 매입규모를 먼저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반면 다른 위원들은 양자를 달리 하기보다 동일하게 축소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어쨌든 향후 회의에서 정책 목적의 달성 여부를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매입 속도와 구성에 변화를 줄 것인지 논의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매입규모 축소를 선언하기 훨씬 전에 고지(notice)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요컨대 테이퍼링 얘기가 나왔지만 논의는 7월(27~28일) 회의부터 시작될 것이고, 구성 변화를 포함한 매입규모 축소가 결정되기 이전 고지까지 감안하면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 시기는 연말로 예상된다. 하지만 통화정책의 중요한 전달경로는 실제 액션보다는 신호(signal)이다. 향후 어떻게 움직일 것이라는 신호가 감지되면 시장참가자들이 미리 움직이게 되고, 효과는 실행에 앞서 나타나게 된다.

금융시장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6월 16일 7bp 상승한 1.57%를 기록한 이후 하락세를 보였고 공개된 의사록도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7월 9일 현재 1.35% 수준이다. S&P500지수는 6월 16일 전후 소폭 하락했지만 21일 이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달러지수의 경우 5월 말 89.6을 단기 저점으로 FOMC 회의 이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7월 12일 현재 92.2 수준이다. 달러가 강세이지만, 테이퍼링 논의의 영향은 현재까지 보이지 않는다.

시야를 미국 밖으로 넓혀 보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4월 21일 캐나다중앙은행이 국채매입 규모를 축소했고, 7월 6일 호주중앙은행은 9월부터 주간 정부채권 매입 규모를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자산매입 목표 규모에 접근하고 있는 영란은행은 도달 이후 매입 중단 가능성이 크고, 뉴질랜드중앙은행도 지난 5월 계획했던 매입규모를 채우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브라질, 멕시코, 러시아 등은 이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칠레, 콜롬비아, 페루, 남아공 등이 뒤를 이을 전망이다.

우리나라 한국은행도 금리인상을 예고했다. 지난 5월 27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이후 기자간담회에서는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했지만, 6월 24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설명회에서 '완화적 통화정책을 연내 적절한 시점에 정상화해야 한다'고 얘기한 것이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감안하면 10월 12일 또는 11월 29일 회의에서 첫 금리인상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다. 금리인상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지금까지 논의를 정리해보면,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 미 연준은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2013년과 달리 지금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가 먼저 움직이고 있다. 당시엔 테이퍼링이 모두에게 생경했지만 한번의 경험을 통한 학습효과가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연준의 테이퍼링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실행되도 발작은 없을 전망이다. 이보다 국가별 백신접종 확산과 내수 및 서비스업 회복, 노동시장과 인플레이션 등 펀더멘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

※칼라무스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Calamus Gladio Fortior)'라는 라틴어 문장에서 따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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