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만큼이나 도쿄올림픽도 뜨거웠다. 훈훈하고 감동적인 소식들이 끊이지 않고 쏟아졌다. 그러다 보니 금융 분야에서 챙겨볼 만한 뉴스가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스포츠 뉴스에 묻혀 흘러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동향이라면 아주 작은 소식도 놓치지 않는 국내 언론이 보름 전 연준이 도입한 대기성 RP 프로그램(SRF, FIMA)을 제대로 알리지 않거나 엉뚱하게 해석했다.

7월 28일 연준은 금리목표 수준과 국채매입량에 관한 통상적인 통화정책과 함께 SRF(standing repo facility)와 FIMA(foreign and international monetary authority repo)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국내 금융기관이나 외국 주요 기관(국제기구·중앙은행)이 자금이 부족할 때 초단기(1일)로 연준에서 RP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장치다.

상당수 국내 언론은 이를 '신중한 테이퍼링 신호'라고 해석했다. 테이퍼링이 시작되면 시장금리가 급등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했다고 본 것이다. 이는 저간의 사정을 모르는 데서 오는 추측이다. 잘 알려진 대로 2019년 9월 17일 미국의 1일물 RP금리가 갑자기 장중에 8.75%까지 치솟았는데, SRF와 FIMA는 그에 대한 대응책이다.

당시 미 연준의 금리목표는 2.0~2.25%였으므로 연준은 깜짝 놀라 750억달러를 시중에 공급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급준비금이 만성적으로 초과상태라서 연준의 RP 매입은 9개월 이상 정지 상태였다.) 그럼에도 RP금리는 3.25%를 기록했고, 금융시장에서는 미 연준의 시장 통제력이 저하되었다는 평이 나왔다.

돌이켜보건대, 금리급등은 그날뿐이었다. 전일 대규모 법인세 납부(750억~1천억달러 추정)에 더하여 당일 금융기관들이 정부에게 국채 매입자금을 지불(540억달러)한 데서 생긴, 단기금융시장의 일시적 쏠림이자 해프닝이었다. 그럼에도 미 연준이 SRF와 FIMA를 도입한 것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는 프로 기질을 보여준다.

미 연준은 이런 장치를 마련하느라고 2년 가까이 절치부심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시인 윤동주를 연상케 한다. 이는 한고비만 지나가면 금방 잊어버리는 한국은행과 확실히 다르다. 2019년 국정감사 때 한국은행은 화폐박물관 건물에 남아 있는 이토 히로부미의 휘호(정초석)를 어떻게 처리할지 연구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1년이 넘도록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냥 잊어버린 것이다. 결국 지난해 국정감사 때 다시 묻는 국회의원들에게 호된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SRF와 FIMA를 도입하는 것이 2년이나 걸릴 만한 일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시간이 걸린 이유는 있다. 미 연준법과 한국은행법에는 채권의 매매를 반드시 '공개시장에서' 하도록 되어 있다. 경쟁입찰을 통해 불특정 다수와 거래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자금 사정이 급한 금융기관이 이용하는 SRF와 FIMA는 성격상 경쟁입찰을 하기가 어렵다. SFR과 FIMA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미 연준이 특정 기관과 채권 거래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당연히 미 연준법과 충돌한다.

미 연준이 법을 어기면 의회가 제동을 건다.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 계약이 그렇다.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 계약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승인하지만, 그것은 분명 입찰을 거치지 않는 밀실 거래다. 그래서 미 의회는 밀실에서 이루어진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 계약은 반드시 사후에 미 의회에 별도 보고토록 의무화했다. SRF와 FIMA도 틀림없이 비슷한 시비와 규제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미 연준이 2년을 끈 이유는 바로 그런 가능성까지 타진한 뒤, 규제를 각오하고 파장을 가늠하는 데 시간이 걸린 때문으로 보인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모습이다. (파월 의장은 변호사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어떤가? 자신의 업무수행 근거인 한국은행법 연구도 참 부족하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발생 직후 미 연준은 최종대부자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 영리기업 여신을 서둘렀다. 그때 정부와 언론은 한국은행도 비슷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했으나, 한국은행의 첫마디는 "한은법상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연구해 보니 얼마든지 방법은 있었고, 나중에 한국은행은 영리기업에 대한 돈줄을 풀었다. 평소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면서 법률의 세세한 면까지 꿰뚫고 있다가 비상시국에는 과감하게 행동하는 미 연준과 너무 달랐다.

미 연준 직원들의 경제분석과 전망 실력은 대단하다. 하지만 박사급 인력은 한국은행도 부족하지 않다. 한국은행 실무자들은 미 연준의 은행감독 기능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금융시장과 금융기관들을 향한 미 연준의 존재감과 위력은 감독업무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업무에 달려드는 전 직원들의 집요함과 치밀함, 그리고 전문성에서 나온다. 이것을 통틀어 조직문화라고 한다. 한국은행과 직원들은 조직문화를 돌아봐야 한다. 정년퇴직을 얼마 남기지 않은 필자가 충심으로 드리는 고언이다.

◇사족: 지난해 한국은행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10년간의 중장기 발전전략을 발표하면서 그것을 'ACE'라고 요약했다. 여기서 시작 A는 유연성(agility)이고, 끝 E는 전문성(expertise)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노미스마(nomisma)'는 그리스어로 화폐와 명령(법)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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