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벤처기업 유관단체의 송년모임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여럿이 담소를 나누던 중에 공과대학 교수가 우리나라 제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이대로면 제조업의 기반이 붕괴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였다. 그 원인의 하나로 우수 인재가 이공계가 아닌 의대, 약대 등 의학계열에 편중되는 현상을 지적했다. 나아가 제조업은 건물과 재고품이라도 있지만 바이오산업은 유형자산은 물론 매출이나 이익도 없는 기업이 과도하게 고평가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의과대학 교수가 반기를 들며 대한민국의 의료산업이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도 우수 인력이 의학계열에 모였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또 미래 산업은 유형 자산보다도 특허, 노하우, 데이터 등 무형의 자산이 더 큰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며, 그런 차원에서 바이오의 산업적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이러한 바이오의 산업적 특성을 고려해 만든 대표적인 제도가 기술특례상장 제도이다. 기술특례상장 제도는 비록 현재의 영업실적은 미미하지만 기술력과 성장성을 갖춘 바이오기업들이 전문평가기관의 기술평가를 받아 상장이 가능하도록 한 제도이다. 당초 바이오 업종에 국한되었던 기술특례 대상을 2013년 4월 업종제한을 폐지하여 모든 업종으로 확대하였고 이후 사업모델 평가,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기업) 특례절차 도입, 시가총액 우수기업에 대한 기술평가 절차 간소화 등 유형도 다변화하였다. 특히 작년에는 기술특례 상장이 25사로 2005년 제도 도입 이래로 연간 최고치를 기록하였고, 최근 3년 연속 20사 이상을 유지하여 기술특례상장이 코스닥 상장의 메인 트랙으로 안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술특례상장 제도가 상장의 주요한 루트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도입된 지 16년이 지난 현재까지 의미 있는 혁신 신약의 개발이 없고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임상 실패 소식으로 소위 좀비기업이 양산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2∼3년간 국내 바이오 신약개발사의 임상시험 실패로 촉발된 스캔들이 이어져 왔다. 자본시장에서 문제가 된 바이오기업의 대부분이 스타트업인데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이 신약 허가 최종 관문인 임상 3상을 통과해 미국 FDA로부터 허가를 받은 사례는 아직 없다.

신약 개발이 제대로 진전되지 않을 경우 퇴로도 없다. 퇴로가 없다 보니 성공 기대감에 몰려든 투자자들에 대한 부담으로 신약 개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를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감추거나 멋대로 해석해 분칠하는 경우가 나타났다. 신약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다른 신약으로 선회하거나 인수합병 등으로 기업을 정리해야 하는데, 국내 여건상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일부 바이오테크 기업에서 임상 2상 통과 정도에서 기술을 매각(licensing out)하는 성공모델은 나타나고 있지만 성공 확률이 낮고 기술평가가 어려운 신약 개발 사업은 대형 제약·바이오사가 협업에 나서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신약 개발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고위험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신약 개발에 소요되는 기간은 통상 10년에서 15년, 5천∼1만개 후보물질 중 단 1∼2개만 신약으로 살아남는다고 한다. 비용도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 이상이 든다. 혁신신약 개발에만 1조5천억원에서 1조7천억원이 든다는 분석도 있다. FDA 통계에 따르면 한 후보물질이 임상을 거쳐 신약 허가 신청까지 통과할 확률은 9.6%라고 한다. 따라서 개발 단계에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는 바이오산업에서 장기투자를 하는 벤처캐피탈(VC)의 역할이 중요한데 국내 VC는 아직 장기 투자를 담당할 만큼 규모가 크지 않다. 결국 기업이 IPO를 통하여 자금을 확보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기업들의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기술특례를 통한 신규상장의 증가 추세에 편승해 기술성과 사업성이 검증되지 않은 기업도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하는 사례도 있다. 경쟁자가 따라 올 수 없는 강한 원천 기술과 특허에 기초한 상장이 아니라 상장심사를 통과할 수 있도록 기술을 적절히 조합하고 상장요건에 맞도록 기업을 만드는 소위 기획바이오로 상장을 노리는 기업은 없는지 냉철히 반성해야 한다. 기업이 보유한 기술력 수준과 보유기술의 수익 창출 능력 등을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면밀히 심사하여 투자자 보호에도 빈틈이 없도록 기술특례상장 제도를 운영해 나가야 한다. 또 신약 개발에 통상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현실에서 상장 후 5년간만 적용을 유예하고 있는 연간 매출액 30억원 미만으로 인한 퇴출 요건은 과감히 현실화하여 바이오기업이 매출을 위해 비관련 사업에 진출하여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업이 신약 개발이라는 목표에 도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것을 투자 재료로 삼아 기업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유발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김재준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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